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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단축에 밀려난 "안전제일"|지하철공사붕괴 계기로 본 문제점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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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서울 도심을 지날 때마다 불안하게 느껴지던 지하철공사장에서 끝내는 대형사고가 일어났다. 시민들은 멀지 않은 장래에 쾌적한 대중교통수단인 지하철을 이용한다는 생각아래 공사장구간의 교통체증과 소음, 잇따른 단전, 단수에도 말없이 참아왔다. 그러나 시민의 세금으로 공사를 진행중인 서울시당국이나 지하철공사 측은 이 같은 시민의 각종불편과 위험보다는 공사자체만 앞세워온 감이 없지 않았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서울의 지하철공사 현황과 문제점 등을 긴급 진단해 본다.

<공사현황>
71년 당시 3백30억원의 공사비를 들여 서울지하철1호선(9.5km)을 착공, 74년8월15일 역사적인 개통을 한 뒤 급증하는 교통수요에 맞추어 2, 3, 4호선(순환선 48.8km, 구파발∼양재동 27km, 상계동∼사당동 30km)이 착공된 것은 이보다 4년 뒤인 78년 2월과3월. 이 가운데 신설동∼왕십리∼성수동∼구의동∼잠실대운동강구간 14.1km가 착공 2년8개월 만인 80년10월 완공돼 현재 1호선과 함께 운행중이다.
2호선의 나머지구간과 3, 4호선구간에는 올해 5천9백2억2백만원을 투입, 2호선은 83.9%, 3·4호선은 50.2%까지 공정을 달성할 계획으로 공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서울시가 건설하고있는 지하철의 총 연장은 105.8km로 2호선은 83년 말, 3·4호선은 84년말 완공을 목표로 하고있다.
시는 81년 말까지 5천32억원을 투입한데이어 올해 5천9백2억여원, 83년 6천2백7l억원, 84년6천50억원을 각각 투입한다.

<공법·시공자·공사기간>
74년 지하철1호선개통을 본 서울시는 도심에서의 개착공식사방법이 교통에 막대한 지장을 주게되자 2호선부터는 오스트리아의 골저가 개발한 나틈공법을 도입, 터널을 뚫어 시멘트구조물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강재지보를 하지 않고 지벽에 반원형의 철재를 깐 뒤 시멘트를 붙여 굳게 하는 방법을 쓰기로 했다.
그러나 이 방법이 공사기간, 비용면에서 개착식보다 1.5∼2배나 더 든다는 이유 등으로 3, 4호선 공사에서도 변두리지역과 마찬가지로 도심구간에서도 개착식을 사용, 지반 붕괴 등의 위험을 가중시켰다. 이번 현저동 공사장 붕괴사고도 공사비 절약 등을 이유로 개착식 공법을 그대로 사용하다 일어난 것이다.

<설계·노선변경>
충분한 시간 여유를 갖지 못한 채 건설되고 있는 지하철공사가 진행과정에서 잦은 설계·노선변경·연장 등으로 공사비추가부담은 물론 이에 따른 공기(공기)연장, 촉박한 시일 안의 지질조사 등은 안전을 크게 위협하는 요인의 하나로 지적되어있다.
83년 말 완공목표인 2호선(48.8km·순환선) 의 경우 지난 한해동안에만도 시민편의와 지하철기능 확대라는 명목으로 5건의 설계변경 및 설치지점·공사내용 등을 변경했고 3, 4호선에서도 노선의 직선화, 교통수요변화, 정류장의 적정배치 등을 이유로 4차례나 노선변경·연장 등을 함으로써 지하철공사가 전체적으로 신중하게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다는 인상을 짙게 풍기고있다.
2호선 가운데서는 지난해 2월11일 도심의 주차장난을 해소한다는 이유로 78년3월에 착공해 이미 지하하단까지 개착이 끝난 을지로구간(을지로입구∼6가)의 설계를 바꾸어 뒤늦게 시청 앞 새서울지하상가(백남빌딩)에서 서울운동장 옆을 을지로6가역까지 2천8백35m에 사람이 다닐 수 있는 지하통로와 지하주차장을 만들기로 함으로써 작업능률과 공사비부담에서 큰 손실을 가져왔다. 이 공사로 인한 경비추가부담만도 62억원.
서울시는 이어 3윌28일 시청앞역(2호선)을 당초 고시했던 서소문동58의25에서 갑자기 서소문동 75의41∼12까지로 바꾸어 일부 주민들의 이해에 이끌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밖에도 5월2일에는 도심구간의 교통체증을 이유로 오픈컷(개착공법)방식을 터널식으로 뒤늦게 바꿔 공사비·기간이 1.5∼2배나드는 결과를 빚었고 이에 따른 지질조사도 원점으로 되돌아가 다시 실시하는 등 1호선 때의 경험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 허점을 드러내기도 했다.
서울시는 이어 5월26일에는 또 한차례의 설계변경을 실시, 기본절개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시청앞역에서 을지로입구까지(폭8m·길이3백m, 시청앞역에서 서소문 쪽에 세워질 2호선의 시청앞역까지(폭8m·길이1백m)지하인도를 추가로 뚫기로 해 현재 진행중인 이 공사로 13억원이 더 소요되게 됐다.
3호선의 경우도 착공전인 79년9월 당초계획노선을 구파발∼갈현동∼역촌동∼신사동∼북가좌동∼서대문 구청 앞∼홍제동에서 구파발∼불광동∼대조동∼녹반동∼홍제동4거리∼서울여상 앞으로 조정돼 전체구간이 30km에서 27km로 줄어 공기단축과 함께 공사비가 약3백억원이나 줄어들게 됐으나 주택밀집지역인 역촌·신사·북가좌동 등지의 주민교통편의를 외면하고 만 셈이다.

<사고·불편사례>
지난 한해동안 지하철공사로 인한 상수도파손·건물손상 등은 무려3백56건, 이 가운데 건물은 금이 가거나 붕괴위험으로 주민들이 대피하는 등의 사고가 3백6건으로 86%, 상수도 파손이50건으로 14%를 차지했다. 이밖에 지하철본부나 공사가 집계하지 않은 각종 교통사고는 이보다 훨씬 많고, 땅주인과의 협의 없이 개인소유건물을 헐거나 공사 우선을 내세워 시민들의 편의를 외면하는 사례도 부지기수.
지난달 26일 하오3시쯤 서울 서초동 118의1 지하철3호선 332공구 공사장에서 길이 19m의 파일을 박는 작업을 하던 중 현장에서 6m 떨어진 우신연립주택 2동 2층 건물 일부가 지반이 내려앉아 금이 가는 바람에 4가구가 긴급 대피했다.
또 공사장의 다이너마이트 폭발과 중장비의 철야작업으로 공사장 주변의 주민들은 밤잠을 설치고 어린이들은 돌연한 폭음으로 깜짝깜짝 놀라기 일쑤다. 이는 공사 때 소음을 최소한으로 줄여보려는 시공주들의 성의와 대책이 없기 때문.
또 을지로전구간 도로변상가는 2년째 계속되고있는 공사로 장사가 안 되는 데다 이를 감한 세금혜택도 없어 대부분의 상인들이 개점휴업상태로 울상을 짓거나 일부는 아예 다른 곳으로 점포를 옮기기도 했다. <홍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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