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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의 휴먼북스] 천진난만한 아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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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사람들은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그러나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과 되찾을 수 없는 아이의 모습, 그것은 신화가 되어 돌아온다. 인류사에서 신화 만들기와 신화 해체하기는 지속적으로 있었다. 특히 탈신화의 작업은 현대사의 특징이다. 하지만 탈신화의 역풍 속에서도 끈질기게 그 생명력을 발하고 있는 것은 '아이의 신화'일 것이다. 그것을 대변하는 말은 '아이의 천진난만(天眞爛漫)'이다.

그러나 말 그대로 아이의 영혼과 행동이 순진하고 참될까? 아이의 신화가 지닌 허상을 판타지 수법으로 교묘하게 공략한 사람이 제임스 배리다. 그는 20세기 초 발표한 '피터 팬'에서 매정하고 잔인하며 복수심으로 가득 찬 아이 피터를 기막히게 그려냈다. 최대한 빨리 많은 어른들을 죽이고자, 혼자 있을 때면 의도적으로 일초에 다섯 번씩 짧고 빠르게 숨을 내뱉는 피터의 행동 하나만으로도 이를 증명하기에 족하다(네버랜드의 전설에 의하면, 아이가 숨을 한 번 내뱉을 때마다 어른이 한 명씩 죽는다고 한다). 배리가 자신의 모습을, 이 '비인간적인' 피터가 아니라 손목도 없는 악당이지만 뭔가 내면 깊숙이 고뇌하는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후크 선장에 투영한 것은(후크의 이름은 배리와 똑같은 '제임스'다) 의외가 아니라 당연한 일이다.

배리보다 반세기도 훨씬 전인 1845년에 독일의 한 의사는 비밀 코드로 가득 찬 삽화가 곁들인 운문 형식의 짤막한 동화 한 편을 발표한다. 그것이 '하인리히 호프만 박사의 더벅머리 아이'다. 여기서 호프만은 아이의 신화를 철저히 분쇄하면서 '아이의 현실'을 섬뜩하리 만치 그려낸다. 우리 시대의 아동심리학자 아니타 엑슈테드는 '동화의 정신분석학적 해석 -하인리히 호프만 박사의 더벅머리 아이'(문학동네)에서 호프만의 운문들을 세심하게 정신분석학적으로 재구성함과 동시에 그 삽화의 비밀 코드들을 풀어 보여주고 있다. 그는 호프만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아이의 현실을 말초신경에 이르기까지 '해부'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의 신화는 21세기에도 그런 대로 연명하고 있지만, 그것을 해체하고 해부하는 시도 또한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아이는 누구보다도 인간 본성을 표출하지만, 아직 '인간적'이기에는 그 앞에 성장의 행로가 너무 많이 남아 있는 것이다. 심리학자 에릭슨은 '순수한' 아이를 동경할 게 아니라 사람 의식이 부분적으로나마 아이의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 인간 비극의 핵심임을 인식하라고 했다. 이 또한 아이의 신화에 찬물을 끼얹는 말 아닌가.

(영산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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