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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부등 5명|구속영장 요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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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구속된 최기식신부등 5명의 구속영장요지는 다음과같다.
◇김현장(32·조선대공대졸·적용법규 국가보안법·범인은닉)
▲80년6월초부터 검거될때까지 원주교구청 교육원에 은신하면서 80년12월중순부터 81년12월까지 6회에 걸쳐 6박7일, 3박4일 기간의 대학생등 27명에게 의식화수련회(MT)를 주도, 각종 불온서적을 인용, 4∼6명씩 클럽을 구성, 오전6시부터 밤10시까지 상호 토론하는 방법으로 좌경의식화 시킴.
▲81년12월초순 부산 문부식자취방에서 문에게 미문화원은 미국의 정치·경제·문화의 우상이기때문에 한미관계를 이간시키기 위하여는 미문화원에 방화해야 한다라고 선동하고 광주 문화원 방화사건은 큰효과를 거두지 못하였으니 광주문화원 방화때처럼 지붕의 기왓장을뜯고 휘발유를부어 방화하는 방법을 택하지말고 치밀한 계획을 수립하여 실수없이 하라고 지시하였고 다음날 문부식과같이 부산문화원 현장을 답사, 내부구조를 시찰하면서 방화때는 반드시 사진을 촬영하고 살포할 불온비라내용에 『북침준비완료』라는 문구를 꼭넣어 제작 살포토록 지시함으로써 문부식등이 3·18방화하도록 교사함.
▲82년3월20일 원주교육원으로 도망온 문부식·김은숙을 지하보일러실 밀실에 은신시키고 방화사실을 보고받은후 너희들이 행방불명이되면 의심받을 것이니 일단 부산으로 내려가 알리바이를 조성하고 방화현장 사진필름을 없애 버리도록 지시하면서 문길환으로부터 받은 50만원중 문부식에게 23만원, 김은숙에게 17만원을 도피자금조로 제공하고 김영애로 망우리까지 호송케함.
▲82년3월28∼31일사이 3회에 긍하여 교육원 지하실에서 문부식·김은숙과 함께 북괴평양방송으로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을 지지하는 북괴학생선동집회 상황을 청취함으로씨 이들을 격려.
▲82년3월31일 최기식신부방에서 자수문제를 결정하고 최신부·문부식·김은숙·본인등 4명이 합석한 자리에서 자수후 조사받을때 의식화 교육받은 내용과 문길환·김영애에 대한것은 은폐하도록 하라는 지시를 하였음.
▲80년5월19일 구례등 천은사에서 광주사태와 관련된 유언비어등을 조작, 「살륙작전」 제하의 불온유인물 초안을 작성하였고, 80년5월21일 전주남문교회집사 오병권(48)이 경영하는 전주시다가동소재 기독서점에서 목사 서용서(32·부안교회), 문흥근등과 전시 초안을 검토하여 1만부를 인쇄하였고, 80년5월22일 전주교전주교구 사목국장 김봉희에게 동유인물10부를 전달하고 전주교구측에서도 동내용을 제작하여 전신도들에게 배포해달라고 요청, 1만부를 추가 제작케하여 배포함.
◇최기식(38·천주교원주교육원장·적용법규 범인은닉)
▲80년5월하순 대전평신도 사도직협의회 감사 유지훈(45)의 소개장을 지참한 김현장으로부터 은신을 시켜달라는 부탁을 받고 교육원보일러실에 밀실을 마련, 은신처 제공.
▲80년12월중순부터 동교육원에서 김으로 하여금 대학생 의식화수련회(MT)를 실행케 함으로써 전주·부산·원주등지의 대학생 27명을 6회에 긍하여 합숙교육시킨바 있으며 그때마다 참석자들을 격려하고 보고받았음.
▲82·3·19 김이 최신부에게 『어린학생들을 또 징역보내게 되었다』고 하며 부산방화사건관련사실을 고백하자 동교육원 관리인 문길환에게 위로해 주라고 하며 도피은신에 자금이 필요할테니 50만원만 주라고하여 문길환이 다음날 낮12시경 제일은행 원주지점에서 50만원을 인출, 김에게 전달함.
▲82년3윌28일 문부식과 김은숙을 은신시키고 3월31일 자수직전 8만원을 문·김에게 수교함.
▲의식화 수련회 실시기간중 김현장에게 자신이 보관하고있던 각종진정서·탄원서·민청학련사건재판기록등 l5종의 유인물을 학습교재로 제공.
▲81년9월초 공주사대 금강회사건으로 도피중인 이상헌이 동교육원에 찾아와 최신부에게 은신을 요청하자 『이곳에는 한사람이 있으니 장성성당 이병돈신부에게 인계하라』는 지시를 동교육원 정인재에게하고 여비2만원을 제공함.
◇문길환(37·원주교육관리인·적용법규 국가보안법제7조, 헌법제151조)
▲80년6월∼82년4월2일 교육원에 김현장은닉.
▲81년1월∼3월22일 김으로부터 의식화교양을받고반국가단체활동에동조.
▲3월19일09시00경 최신부에게 김현장이 부산방화사건에 관련이 있다고 보고하자 도피자금을 준비하라는 지시를 받고 익일 10시00 제일은행원주지점에서 50만원 인출, 동일 16시00 김에게 도피자금을 전달.
▲82년3월21일 교육원에 찾아온 문부식·김은숙에게 은신처 제공.
▲82년3윌28일 문·김을 은닉하고 보일러실창고에 비밀창고를 만들어 김현장의 은신처제공.
◇김영애(25·치악산서점경영·적용법규 헌법151조, 국가보안법7조2항, 집회및시위3조1항)
▲81년1월∼3월22일간 김현장으로부터 의식화교육을 받고 반국가단체활동에 동조.
▲81년4월10일 의식화수련생 민경은(원주간호대2), 김성기(연대분교의예2), 이현숙(연대분교경제2), 박정하(방위병)등 8명구성, 김현장에게 인계.
▲81년8월∼82년1월13일간 김현장에게 도피자금 30만원을 6회에 걸쳐 제공.
▲81년12월14일 김장지시로 부산의식화수련생 문부식의 2명을 영주역에서 약정된 신호에 의하여 문등 3명과 접선, 교육원까지 안내.
▲81년12월17일 18시 김현장지시로 원주역에서 허진수를 전시 접선신호의 방법에 의해 접선하여 교육원으로 안내.
▲82년2월17일 의식화수련생 정윤환(강원대 수학2), 정광호(상지대3), 강명근(연대분교의예2)을 구성, 김현장에게 인계.
▲82년3월18일20시 치악산서점에서 부산방화사건 범인이 문부식소행임을 알았음.
▲82년3월21일10시 김현장지시로 원주 남부시장에서 문부식·김은숙접선, 교육원으로 안내.
▲82년3월22일12시 김현장의 지시로 문부식·김은숙을 서울 망우리까지 호송.
▲82년3월28일 문·김을 치악산서점에 은닉시키고 김현장에게 인계.
◇오상근(29·한국가톨릭농민회조사부원·적용법규헌법제151조)
▲80년5월하순경 대전시대전동소재 가톨릭문화회관내 가톨릭농민회본부 사무실에서 사무국장 이길재의 인사소개로 김현장을 알게됐음. 김현장이 광주사태시 「살륙작전」이라는 불온유인물살포 주동자로 도피중임을 알면서도 80년8월부터 82년2월까지 9회에 걸쳐 1∼2일간씩 숙식을 제공하는등 범인을 은닉한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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