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P UP] "유령 땜에 못 살아" 공연계 덜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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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유령 때문에 못 살겠다." 요즘 공연계에 나도는 푸념이다. 유령은 다름아닌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워낙 유령의 인기가 거세다 보니 다른 공연들은 파리 날린다는 것이다.

제작사.후원사 등을 상대로 소문의 진상을 캐봤다. 유령의 인기는 도처에서 확인됐다. 현대백화점은 1년 쇼핑액이 5000만원이 넘는 최우량 고객에게 원하는 공연 티켓을 무료 제공하는 사은행사를 연초부터 해오고 있다. 재즈.오페라.발레.오케스트라 연주회 등 장르를 망라한 15개의 후보 공연 중 티켓 가격으로 유령(VIP석 15만원)은 중간 수준. 하지만 지금까지 신청한 500여 명의 절반 정도가 '오페라의 유령'을 선택했다. 삼성전자의 가전 브랜드 하우젠은 4월 초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유령을 보고 싶다는 대답이 압도적으로 많아 협찬사로 참여했다. 역시 협찬사인 BC카드는 설문조사를 하지는 않았지만 마케팅팀 자체 판단에 따라 참여를 결정한 케이스.

유령은 표만 빨아들이는 게 아니라 기업들의 '문화 마케팅 파이'까지 독식하는 분위기다. SK 텔레콤 등 3개사의 영국 로열발레단 공연에 대한 협찬은 1억원이 되지 않는다. 반면 유령은 BC 카드에서만 4억원 가까운 협찬금을 챙겼다. 유령 투자사의 한 관계자는 "기업들의 공연을 통한 문화 마케팅 자금이 유령에 쏠리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올 여름 유령은 살맛 났지만 공연계는 춥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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