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3374)|화맥인맥 월전 장우성(93)|국회의사당 벽화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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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나는 75년 새 국회의사당이 여의도에 준공되어 벽화를 그려야 했다.
태평로에 있던 국회사무처에서 당시 선우종원총장이 국회의사당 건설국장을 내게 보내 벽화제작을 의뢰해 왔다.
그림내용도 작가에게 일임해서 여간 부담스럽지가 않았다.
어느 벽면에 걸 것인지 몰라 소재를 찾기가 막연해 국회사무처에 현장을 보았으면 좋겠다고 연락했다.
그랬더니 선우총장이 직접 안내, 내 그림을 걸 의원휴게실은 물론 국회의사당 전체건물을 샅샅이 보여줬다.
그 때 여의도 국회의사당 건설공사가 한창 진행중이었지만 외형은 완성되어 내부구조를 짐작할 수 있었다.
벽면을 대충 재 보았더니 길이가 7m, 높이가 2m나 되었다. 무엇을 그려야 할까 골똘히 생각하면서 국회의사당을 돌아봤다.
마침 지금 쓰고 있는 국회의사당 오른쪽에 그와 똑 같은 방이 있는 걸 보고, 선우총장에게 『의사당이 둘이냐』고 물었다.
선우총장은『남북통일이 되면 상원·하원이 쓸 예정으로 둘을 설계했다』고 말했다.
현장을 답사하고 돌아오는 차중에서 얼른 머리에 떠오른 것이 「전민족적인 의사당」이었다.
「거국적인 의사당」을 상징하려면 『백두산 천지도』가 어떨까 하고 생각해 봤다.
아무리 궁리해봐도 다른 소재로는 그 벽면을 채울 수 없을 뿐 아니라, 민족전체의 의견을 규합하는 전당인 국회의사당에는 우리민족의 발양지인 『백두산천지도』가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국회건설위원회에 『백두산천지도』를 그리겠다고 통보했다.
각계인사 10여명으로 구성된 국회건설위원회에서는 내 통보를 받고 회의를 소집해 『그 보다 좋은 소재가 없을 것이다』면서 만장일치로 확정해 줬다.
위원회는 내게 스캐치형식으로라도 어떻게 그릴 것인지 자료를 내 달라고 요청했다.
그래 부랴부랴 백두산천지도 자료수집에 나선 것이다.
상상으로는 그릴 수 없는 일이어서 실물사진을 찾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일제시대 조선일보가 백두산탐험대(단장 서 춘)를 구성, 백두산 천지까지 올라갔다 온 일이 생각나 탐험대의 일원이었던 나의 고향친구 성천(유달영)을 찾아가 그 때 스크랩북을 뒤질 수 있었다.
성천의 도움으로 백두산 천지의 흑백사진도 보고 탐험한 이야기도 들었다.
성천의 자료를 토대로 우선 연필로 스케치 해 국회건설위에 제출하면서 자료를 보완, 좋은 그림을 그리겠다는 단서를 붙여보냈다.
이리저리 수소문 끝에 남북적십자회담 때 평양에 다녀온 모 인사가 최근에 찍은 백두산천지의 천연색사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사진가진 사람의 측근을 찾아가 백두산 사진이야기를 꺼냈지만 어찌나 쉬쉬하는지 보기조차 어려웠다.
몇차례 간청, 즉석에서 한번 훓어 볼 수 있었다. 이 때를 놓칠세라 가지고 간 연필로 도화지에 원사, 백두산천지의 모습을 담아왔다.
화실에 가지고와 성천의 자료와 함께 놓고 형태를 잡았다. 형태는 실경에 가깝게 되었는데 색채가 문제였다.
다시 찾아가 백두산사진을 복사하자고 사정, 그림을 그린 다음에 되돌려주는 조건으로 천연색으로 되박아 왔다.
사진이 선명해서 백두산의 실상은 물론, 색채까지 실경대로 뽑을 수 있었다.
『백두산천지도』는 영구보존할 작품이어서 좋은 재료를 써야했다. 일본에서 사올 재료구입 품목을 적어 국회총무국에 넘겨주었다.
처음에는 일본에 나가 있는 우리나라 회사를 통해 구입해 주겠다더니 무역회사들의 통관절차가 까다로와 할 수 없다고 난색을 표명했다.
그래서『내가 직접 재료를 사러갈터이니 여권이나 내달라』고 했다. 그 때는 여권내기가 까다로 왔다. 내가 일본에 가서 재료는 샀는데 돈이 문제였다. 일본에서 개업하고 있는 의사친구에게 돈을 빌어 쓰고 그가 한국에 오면 갚아주기로 했다. 유변당에서 오래돼도 변합 없는 광물질 채색인 석채를 샀다. 금분도 사고 큰 화선지도 구했다.
7m나 되는 그림을 그리려면 우리나라 화선지로는 불가능하다. 몇장을 이어야 하기 때문에 조각모처럼 누더기가 되어 이은 흔적이 나고 보기가 흉해 큰 걸 구입해야 했다.
일본에는 크고 가죽 같이 두꺼운 순닥지인 마지가 있어 그것 몇장만 사오면 해결할 수 있었다.
마지는 한장 크기가 9×6척이어서 두장만 붙이면 큰 그림도 무난히 그릴 수 있다.
「호사다마」라고 내가 국회벽화 그리는 걸 시기하는 사람이 있었던지 조수를 두고 그려도 괜챦은 걸 가지고 월전 대신 조수가 그린다는 헛소문을 퍼뜨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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