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가정환경 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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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자가용이 있습니다」「VTR도 있어요」라면서 신이 나서 손을 들수 있는 어린이는 우쭐했겠지만, 그 때마다 이를 지켜봐야 하는 어린이들은 참기 어려운 고통을 맛보았을 것이다.
한창 뽐내기를 좋아하는 국민학교 어린이는 물론이지만, 중·고생들마저 「학교가기가 싫다」고 호소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어른이라도 공개석상에서「셋집에 사는 사람」과 대지가 수백평에 이르는 「자기집에 사는 사람」을 갈라 손을 들라고 할 때 자존심이 상하고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특히 국민학교 어린이들에게는 학교선생님으로부터 인정받고, 같은 또래의 급우들과 어울리는 일은 사회생활의 전부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선생님에게 칭찬받고 친구들에게 뽐낼 수 있을 때 즐겁고, 그런 과정을 통해 성장해가는 파란싹과 같은 것이 어린이다. 반대로 그들과의 관계가 불편해지고 거기서 상처를 입게되면 그 흔적은 좀처럼 잊혀지지 않은 채 바른 성장을 방해하게 된다.
「질병으로 생긴 상처는 시간이 아물게 하지만 동심의 멍은 평생을 간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로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때 어린이들은 한 없는 무력감에 빠지게 된다.
당장은 부모가 원망스럽고 자라면서 사회가 싫은 반사회적 성격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어린이의 가정환경이 학교교육에 중요한 요인이고, 교사의 판단에 따라 자가용이나 VTR를 갖추고 있는지 여부가 꼭 알아둬야 할 사항일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을 공개적으로 조사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백지와 같이 밝은 동심에 열등감이란 자국을 내지 않고도 얼마든지 교육적으로 이를 조사하는 길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사려깊지 못한 행동으로 발랄한 동심이 시드는 일은 없어야 겠다. <정순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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