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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박물관 순례(3)대영박물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서구의 대형박물관을 보면 자기나라 것은 극소하고, 통릉 남의 땅에서 가져다가 가득 채워놓고 제 조상의 것인양 자랑하는데 어이 없게 여겨진다. 루브르박물관·대영박물관·메트로폴리턴박물관등이 모두 그러하다. 그중에도 대영박물관에는 그리스 신전의 집채 한쪽을 통째로 옮겨다 재건했다든가 앗시리아 궁전석벽의 부조를 그대로 떠다 놓음으로써 서구사회가 얼마나 잔인한 약탈의 역사였던가 거듭 절감케 했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한번도 거둬들이지 못한채 번번이 뺏기기만 했던 역사가 억울하고 한스럽게 여겨지는 것이었다.
요 며칠사이 중앙청을 국립박물관 건물로 쓴다는 발표가 있자 『그 넓은 방들을 무엇으로 다 채우겠는가?』우려하는 사람이 꽤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지금 한국의 박물관 형편은 그동안 외국유물들을 전혀 전시하지 못했던 관례에 기인하는 것 같다. 가진 물건도 변변치 못하려니와 전시공간도 없었기 매문이다.
중앙청이 연건평 9천6백평이니까 전시면적은 넉넉히 잡아도 5천평에 불과하다. 건평중 전시공간의 비율을 소규모 박물관에선 55%까지도 할당하지만 대형의 좋은 시설에선 35%미만이 통례다. 그리고 평당 1점씩 진열되므로 중앙청이라해도 고작 5천∼6천점이 선보일수 있을 따름이다. 만약 최근의 박물관 추세에 따라 설득력 있게 환경적 전시를 한다든가, 관련자료의 풍부한 제시를 하려면 중앙청건물이 결코 넓지 못한 것임을 곧 알게 될 것이다.
수십개의 길고 넓은 진열실을 가진 대영박물관임에도 자연사와 민족학 관계를 위해서는 2개의 분관을 따로 갖고 있다. 워싱턴의 스미소니언은 아예 14개의 분야별 대형박물관으로 구성된 군집형태다. 본관에 잇대어 동서웡을 달아 건축하는 것은 흔한 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의 경우 약1천5백평의 전시공간에 2천점을 늘어 놓아 궁색한 처지다. 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고분시대의 유물이 한방 안에서 범벅을 이루었는가 하면 서화실이 방하나 밖에 없어서 서예는 아예 끼울 틈도 없다.
박병래씨 기증품은 중앙홀의 한구석을 막아 초라하게 진열됐고, 이홍근씨의 기증품을 특별전시실에 상설 전시하게 되자 특별기획전을위한 예비공간이 전혀 없어져 버렸다.
이웃 일본이나 중국에서 그리도 탐내는 신안해저의 인양 유물만 하더라도 전시할 공간이 없는데 중앙청으로 이사한다 해도 과연 얼마나 전시공간이 주어질지 궁금하다.
동남아와 중동·구미까지는 손댈 겨를이 없다 하더라도, 우선한·중·일 것은 비교 연구되어야 마땅하다. 내것만 가지고 유아독존식으로 도취할 때는 이미 지나 갔으며 그동안 많은 영향을 주고 받아온 이웃 것과 견주어 우리의 우월성을 찾아내야 하지 않겠는가.
서양미술사에 있어 고대 그리스의 미술은 이집트문화를 흡수한 토대위에서 가능했듯이 로마문화 역시 그리스문화를 장기간에 걸쳐 습득함으로써 꽃 피울 수 있었다. 또 프랑스는 르네상스미술을 이탈리아로부터 소화하는데 2백년을 소요했고, 그래서 18세기에 비로소 독자적인 양식을 창조했었다. 그점은 오늘날 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얘기될 수 있을 것 같다.
대영박물관과 같은 큰 규모의 박물관을 볼 때 마다 우리가 너무 폐쇄적이고 국수적인 생각에 젖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큰 박물관에 끼여 있는 한국의 문화재가 너무 적어 초라하기 그지 없거니와, 더더구나 저들의 물건을 우리는 그나마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여겨야 할 때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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