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북한을 무조건 보호할 의무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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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샹양(李向陽) 중국 사회과학원 아태 및 글로벌전략연구원장은 “중국이 무조건 북한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건 아니다”며 전통적인 북·중 혈맹론과 다른 주장을 펼쳤다. 경제학자인 그는 2008년 중공 17기 4차 중앙정치국 집단 학습에 ‘중국 경제 발전방식의 빠른 전환’을 주제로 강연한 실력파다. [베이징=최형규 특파원]

중국 정부 최대 싱크탱크인 사회과학원 아태 및 글로벌전략연구원(NIIS) 리샹양(李向陽·52) 원장은 북한과 중국 관계를 더 이상 혈맹이라는 이념적 사고로 봐선 안 된다고 말한다. 이른바 중국이 말하는 대북 ‘정상국가론’이다. 리 원장은 지난달 22일 박진 전 국회 외통위원장(현 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과 만나 21세기 중국의 달라진 글로벌 전략을 가감 없이 쏟아냈다.

 -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주창한 국가전략 ‘이다이이루(一帶一路)’는 서방으로 향하고 있다. 한국은 관계가 없나.

 “‘이다이이루’는 육상(이다이)과 해상 실크로드(이루) 경제권을 동시에 구축하겠다는 장기 국가전략이다. 육상은 시안(西安)에서 시작해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가고 해상은 중국 연해에서 시작해 인도와 아랍·아프리카로 연결된다. 한데 해상 실크로드 시발점을 놓고 어떤 이는 푸젠(福建)성이나 광둥(廣東)성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한국과 러시아·북한·몽골 등 주변국 이익이 교차하고 있는 동북 해안에서 시작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의 동북아 협력 구상과 러시아의 전략 중심이 최근 유럽에서 동북아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중국의 모든 해안이 포함돼야 ‘이다이이루’가 시 주석이 추진하는 새로운 개혁·개방의 전면적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다.”

 - 중국의 신형대국관계와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이 공존 가능한가.

 “어느 정도 충돌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부상 후에도 기존 국제질서 파괴가 아닌 수호자로 남을 것이다. 중국이 제시한 신형대국관계는 불충돌·불대항·상호존중, 그리고 쌍방 윈윈을 추구한다. ‘이다이이루’ 역시 다원화된 개방형 경제벨트를 만들자는 것이지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겨냥한 게 아니다. 시 주석이 제기한 신형대국관계 역시 중·미만이 아니라 중·러, 중·인도, 중·한 관계도 된다.”

 - 신형대국관계가 한국과 어떤 관련이 있나.

 “한국은 인구나 면적으로 보면 대국이 아니다. 그러나 역내 한국의 역할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중·한 관계는 쌍방을 넘어 역내 관계로 이미 발전했다. 예컨대 동북아 협력이나 역사·안보 문제에서 중국과 한국의 협력이 매우 중요하지 않나. 이렇게 양자 관계가 확대돼 역내 관계로 발전하면 이게 바로 중국이 구축하고자 하는 신형대국관계다.”

 - 시 주석의 ‘신아시아안보관’은 미국을 배제한 중국 중심의 다자 간 안보체제 아닌가.

 “신안보관은 아시아 경제협력 개념에서 출발한다. 역내 정세가 악화되면 경제발전에 한계가 있어서다. 미국은 아시아에 많은 이익이 걸려 있고 아시아 안보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데 어떻게 배제할 수 있겠나.”

 - 중국이 주도하는 브릭스 투자은행이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은 기존 국제금융체제에 대한 도전 아닌가.

 “AIIB는 아시아 인프라 현황을 토대로 제시된 것이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이 남아시아나 동남아의 열악한 인프라 상황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지 않나. ‘이다이이루’는 아시아 인프라 건설을 통해 국가 간 상호 연계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기존 국제금융체제와 상호 보완을 이뤄 아시아 협력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

 - 중국이 AIIB 지분 50%를 차지한다면 중국 은행이지 아시아 은행이 아니다.

 “지배구조나 표결 메커니즘은 각 국가들과 논의 중이다. 지분율은 정부 차원에서 결정할 일이지 내가 답변할 입장이 아니다.”

 - 한국이 AIIB에 가입하면 어떤 이익이 있나.

 “아시아 협력과 경제 안보 차원에서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은행은 원조나 구제 목적이 아니고 투자 수익을 내야 한다. 어떻게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할지 각국이 논의해야 한다. 은행이 설립되면 동북아 협력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연내에 체결될 가능성은.

 “역내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은 2015년 연말까지 체결하기로 돼 있다. 만약 중·한 FTA가 RCEP 이후에 체결되면 두 나라가 RCEP 체결에 적극적 역할을 못하지 않겠나.”(아세안이 주도하는 RCEP는 아태 지역을 하나의 자유무역지대로 통합하는 ‘아세안+6 FTA’다. 아세안 10개국과 한·중·일 3국, 그리고 호주·뉴질랜드·인도 등 16개국이 참여해 협상 중이다.)

 - 시 주석이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 찾은 의미는.

 “중국은 (북한과) 정상적인 국가 대 국가 관계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과거 이데올로기 차원의 협력이 있었고 한국전쟁 중 동맹으로서 참전도 해 사이가 가까운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런 역사가 있다고 해서 북한이 중국 말을 들어야 하고 중국이 무조건 북한을 원조하고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건 아니다. 불평등한 사이가 되면 양국 관계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 한반도 통일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현재 주한미군은 북한의 위협 때문에 존재한다. 그러나 통일이 되면 북한의 위협은 없다. 통일 후에도 미군이 계속 주둔한다면 누구를 겨냥한 것인가. 만약 중국을 겨냥한다면 중국이 바라는 평화로운 한반도가 아니다. 통일 한반도는 인구 7500만이 된다. 주변 러시아와 몽골의 자원에 한국의 선진 제조업이 합해지면 동북아에 새로운 산업협력 고리가 형성될 것이다.”

 - 통일 후 주한미군이 38선 이남에 남는다면.

 “통일 후 한국엔 38선이 없지 않나.”

만난 사람=박진 전 국회 외통위원장
정리=최형규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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