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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심의 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원인을 없애기 위한 대처가 또 다른 원인이 되는 것은 세상사의 역설중 하나다.
전염병으로부터 건강을 지키기 위반 예방접종이 오히려 건강을 해치고 병을 일으키는 아이러니도 그것이다.
그것은 사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체념으로 미루고말 일면도 없지는 않다. 예방접종의 부작용이 현대의학으로는 어쩔 수 없는 불가피한 것으로 돼있기 때문이다.
부작용이 전혀 없고 예방효과가 1백%인 이상적인 예방약은 아직 개발돼 있지 않고 어떤 예방약도 정도의 차는 있을지언정 약간의 부작용은 예상되는 것이다.
그것은 예방접종자체가 예방하고자하는 질병의 원인균을 약하게 해서 체내에 주입하고 그럼으로써 질병에 저항하는 항체를 길러내는 방법인 만큼 질병을 가볍게 앓고 넘기게 되는 과정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는 하나 이 「가볍게 잃고 넘기는 과정」이 뜻대로 되지 않아 「심하게 앓아 목숨을 잃게까지 되는 것」은 역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사고가 예년행사처럼 빈발하고 있다. 작년에도 있었고 엊그제 서울의 한 공장에선 장티푸스 예방접종에 의한 부작용이 집단적으로 일어났다.
장티푸스 예방접종사고는 매년 l∼2명이 희생되는 비율로 일어나고 있으며 콜레라 예방주사와 DPT(디프테리아·백일해·파상풍)접종사고도 역시 자주 말썽을 일으켜왔다.
물론 사고가 빈발할 뿐 아니라 집단적으로 일어나며 또 생명을 빼앗는 만큼 그것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체념한다든가 피해를 보는 사람의 운수불길로 돌려버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운수불길」한 사람은 계속 수없이 나타날 것이고 그걸 방치한다는 것은 비이성적이고 비료학적인 것이 분명하다.
그런만큼 우리가 가능한 한 원인을 밝히고 사고에 대비해야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선 약품자체의 결함을 생각 할 수 있다. 약품은 여러 단계의 엄격한 실험과 검정과정을 거치는 만큼 대체로 안전한 것이 당연시된다.
그러나 죽은 균이어야 할 백신이 멸균처리가 제대로 안됐다거나 이물질이 거기에 함유될 경우 혹은 보관상의 부주의로 약품이 변질되는 경우가 있다.
극히 드문 예지만 그것은 실제로 일어났었다. 1950년 미국의 소아마비백신 사고가 그것이다.
생균이 섞인 주사로 집단소아마비질환을 일으킨 경우다.
이를 막기 위해선 당연히 제약과정에서 철저히 주의하고 완전을 기하는 도리밖엔 없다.
약품의 운반·보관상 실수나 착오가 사고의 원인일수도 있다. 지난해 수입된 소아마비백신 3백만명분이 보세창고안에서 보름씩 일반화물에 섞여 보관되는 바람에 변질된 경우다. 이것이 만일 사용되었더라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상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하다.
접종과정의 실수도 중요하다. 소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든가, 주사량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든가, 약을 잘 흔들어 써야할 때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든가 하는 경우 얼마든지 사고가 일어난다.
수백 혹은 수천명을 접종하느라 정신이 없으면 주사기의 소독이나 정량확인에 소홀하기 쉬운 것은 물론이다. 한 개의 주사바늘로 수십 명을 주사하는 무지막지한 접종도 흔히 경험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주사하는 쪽의 주의도 중요하지만 또 주사를 맞는 사람의 주의도 늘 강조되어야겠다. 건강상태가 나쁘다든가 특이체질인 경우는 스스로 주사를 피해야한다.
주사를 맞은 후에도 주의사항은 또 있다. 목욕이나 심한 운동을 피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으로 돼있다.
이처럼 예방접종이 일으킬 수 있는 사고에 대해 충분한 지식이 있고 상식이 있다해도 사고의 여지는 늘 남아있다.
안전을 과신하기 쉬운 사람의 방심이다.
이제 해동과 더불어 각종 전염병이 서서히 고개를 드는 계절이 되었다. 전염병예방에도 힘을 써야겠지만 예방접종에서 생길 수 있는 불의의 부작용과 불행을 막기 위해 방심의 허를 메워가는 노력이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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