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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엄씨 집성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하송리-.
오대산에서 양 갈래로 떨어진 물길이 동강·서강을 이루며 남으로 뻗다가 손을 맞잡고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지점에 영월 엄씨 가족들이 옹기종기 집성촌을 이루고 산다.
마을 안쪽, 달무리처럼 집들로 둘러싸인 중앙광장에 천골만장의 노 은행목이 수천 가지의 팔을 뻗쳐 하늘을 떠받들고 있다.
엄씨 시조가 이 땅에 뿌리를 내린 바로 그 곳이다.
역사의 명암 속을 드나들며 역대를 이어 가히 l천여 년에 30세손.
한 마을에 25세손부터 30세손에 이르기까지 6대가 함께 산다.
『원래 이 마을의 이름은 행정이었지요. 시조 공께서 이곳에 정착하신 후 손수 은행나무를 심고 마을 이름을 행정이라고 지어 볼러오던 것을 일제 때 행정구역 정리작업을 하면서 솔숲이 우거진 곳의 아랫마을이라고 해서 하송리라고 고쳤는데 지금은 솔숲이 없어 졌어요.』
마을 촌장 격인 엄석언 옹(73·25세손)의 설명이다.
그래서 이 은행나무는 엄씨 가문의 상징물이기도 하다.
수령 l천년에 높이 36m, 둘레18m로 천연기념물 76호로 지정돼있다.
또 이 은행나무는 엄씨들 뿐만 아니라 영월사람들 모두가「신수」라 부른다.
경술국치였던 한일합방 때는 동편 큰 가지가 우연히 부러져 떨어졌고 해방 바로 전에도 동쪽 가지가, 그리고 6·25동란 때는 북쪽가지가 부러져 나라가 큰 재앙을 맞을 때마다 스스로 가지를 부러뜨려 이를 알려 주는 것으로 믿고 있다.
또 엄씨가 자손 번성의 힘이 노거수에 있는 듯 천년을 지난 지금도 고사한 가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밑둥치에서 지금도 새순이 끊임 없이 돋아나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엄씨 일가는 바로 이 은행나무마을을 줄기로 4O여가구가 한 줄기자손.
이밖에도 영월군내에 사는 엄씨 일가는 읍내에 전체 5백여가구, 남면에 2백, 서면에 1백,북면·주천면 2백여호 등 모두 1천여 호가 넘게 살아 열집 건너 한집이 엄씨 문패가 걸린 셈.
뿐만 아니라 지방 유림으로 매년 봄·가을 석전제에는 엄씨 집안사람끼리 전교자리를 터물림 하듯 이어가며 배향한다.
그리고 선조들의 묘를 부전한 후손들 지난65년 은행나무 마을에서 북쪽으로 2km남짓, 봉래산 줄기동산에 시조의 제단을 봉축, 혼백을 모시고 매년 음력 9월말에 전국의 문중이 모여 제향을 받들며 장능·창절사·충의공묘소·은행나무가 있는 마을을 두루 돌아 선조들의 얼을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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