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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전수진의 한국인은 왜

이름이 뭐예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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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전수진 기자 중앙일보 팀장
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질문: 다음 문장을 해석해 보세요. “OOPs, GNPs clash again.”

 ①어머나, 국민총생산(GNP) 재충돌 ②열린우리당, 한나라당 재격돌 ③이해 불가

 상식적으론 ③에 끌리지만 답은 ②다. 기자가 2005년 영어신문 코리아중앙데일리 정치부에서 쓴 기사에 미국인 에디터가 붙인 헤드라인이다. 해괴한 뜻의 사정은 두 정당의 영어 명칭에 있다.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이 정한 영어 이름은 ‘Grand National Party(GNP)’, 열린우리당(새정치민주연합 전신)은 ‘Our Open Party(OOP)’였다. 약어에 복수어미 ‘s’를 붙여 소속 의원들을 표현하려다 보니 열린우리당은 ‘당황스러운 행위를 했을 때 내는 소리(옥스퍼드 영한사전)’를 뜻하는 감탄사 ‘웁스(oops)’가 돼버렸다. 외국인 에디터들은 “무슨 당 이름이 ‘어머나’에다 ‘국민총생산’이냐”며 의아해했다. 의원들 이름은 한술 더 떴다. 이름에 ‘규’가 들어가는 모 의원은 “Q” 한 글자만 고집했고 ‘길’이 들어가는 다른 의원은 “Kill”이라고 해달라는 통에 정치 기사가 블랙코미디로 둔갑하는 것도 다반사였다.

 예술가들의 영어 작명도 가히 예술적이다. 강변가요제 대상자 출신인 어느 가수는 영어 이름을 이렇게 썼다. ‘Leetzsche’. 한번에 이 이름을 읽었다면 그분의 팬이라는 데 한 표. 이 가수(‘담다디’를 부른 이상은씨)에 대한 원고를 받은 미국인 에디터는 “발음 불가”라며 ‘Lee Sang-eun’으로 바꿔 버리기도 했다. 미술계 영어 작명도 둘째가라면 서럽다. 물방울을 테마로 한 화가 김창렬은 ‘Kim Tschang-Yeul’, 현대미술가 이우환은 ‘Lee Ufan’이다. 소나무 사진으로 유명한 배병우 작가는 ‘Bae Bien-u’를 쓴다.

 그런데 요즘엔 여의도에 있는 분들이나 예술가들만 특이하게 영어 작명을 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최근 만난 평범한 회사원 오모씨가 내민 명함엔 성이 ‘Heaux’라고 적혀 있었다. 프랑스어식이란다. 이유를 묻자 “있어 보이잖아요”는 답이 돌아왔다. “근데 프랑스어는 못 하니까 시키지 마세요”라는 당부와 함께. 박씨 성의 어떤 분은 “내 이름은 ‘공원(Park)’이 아니다”라며 ‘Vahk’를 썼다. “발음상 가장 가깝다”는 음성학적 근거를 대며 ‘Mr. E’라고 표기한 이씨 성의 기업가도 있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영어 작명을 갖고 꼬투리를 잡을 생각은 없지만 어딘가 께름칙한 건 기자뿐일까. GNP·OOPs처럼 우스꽝스러운 경우를 피해야 하는 건 기본이거니와, “있어 보이는” 것보다는 “있는 그대로”가 먼저이지 않을까 싶다.

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