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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갤'은 소통해 보려는 시도였을 뿐인데 …"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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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감이 있을거란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클지는 몰랐습니다. 어쩌면 오늘날 정치인들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 같고… "

임종석 열린 우리당 의원이 최근 부쩍 네티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른바'인터넷 폐인문화'를 상징하는 디시인사이드(디시)에 전용 게시판(갤러리)를 개설한 뒤부터다. 정치인들이 개인 홈페이지나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만드는 것은 이미 일반화된 현상이지만, 일종의'매니아 사이트'에까지 자신의 공간을 만든 것은 처음있는 일이다.

하지만 디시 이용자들의 표현대로'국K-1 (국회의원)의 디시 진출'은 수난의 연속이었다. 갤러리는 곧 비판과 욕설로 뒤덮혔고, 이제는'안티 임종석 카페'가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무엇보다 정치인이 권력으로 자신들의'놀이터'까지 침범했다는 거부감이 큰 것으로 보인다. 또 이들 본격적인'인터넷 세대'들이 표출하고 있는 386세대의 정치인에 반감도 생각보다 크다."이미 386도 기성 정치인들과 다름없는 기득권층이며 권위주의에 물들었다"는 것이다.

이질감이 극단적으로 표출된 것이 최근의'찌질이'논란이다. 임 의원이 디시에서 직접 댓글 토론을 벌이던 와중에 네티즌들에게 인터넷 신종어인'찌질이'란 표현을 쓴 것이 화근이 됐다. 이 사실이 여러 인터넷 매체를 통해 알려지면서 상당수 디시 이용자들은 임 의원이 자신들을 비하했다며 격하게 반발했고 일부는 갤러리 폐쇄까지 요구하고 있다.

'임갤'(임종석 갤러리)이 생긴지 꼭 한달째인 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인터뷰를 통해 임 의원은 네티즌들의 비판과 반발이 상당수 오해에서 비롯됐다며"소통의 노력을 계속하면 오해도 풀리고 계속 나아질 것"이라는 낙관론을 내놨다. 이 말많은 정치실험은 아직 실패가 아닌"진행 중"이란 것이다.

다음은 임의원과의 일문일답.

-왜 시작했나.

"정치인에게도 인터넷을 통한 소통이 매우 중요해졌다. 이제 오프라인에서 의정보고서 돌리는게 별 의미가 없다. 그동안은 홈페이지를 통해 소통의 노력을 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홈페이지는 말하자면 사람들에게 '전부 나에게 오라'는 식이다. 쌍방 소통에 한계가 있는 것이다.'임갤'은 기업으로 치면 '찾아가는 서비스'를 한다는 차원에서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디시가 부각됐을 뿐이지 오히려 싸이월드 홈피 등에 시간과 노력을 더 투자하는 편이다."

-'찌질이' 발언은 어떻게 나왔나.

"일부에서 대화의 특정 부분만 퍼나르면서 전체 맥락이 왜곡됐다. 네티즌들이 하도 네게 찌질이, 찌질이라고 하고, 또 서로 사용하기도 해서 나도 정감있게 부른 것일 뿐이다. 예컨데'아이쿠, 내 새끼야' 라고 했다고,'새끼'만 따서 욕을 했다고 공격하면 정당하겠는가. 사실 처음에는'이 찌질이 동지들아'라고 썼다. 하지만'동지'가 너무 딱딱해 보여'친구'로 고쳤다. 사실 386 정치인들이 좀 과다하게 진지한 측면이 있고, 디시에 왔으면 그 문화에 적응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의원실 식구들도 웃으면서 "잘 했다"고 하더라.

-사과할 의향은 없나.

"물론 의도야 어떠했든 사과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권유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사과하고 나면 애초의 진정성 자체를 상실할 수 있다. 잘 모르는 입장에선 '뭔가 잘못했으니 사과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 않겠나. 열심히 해명하려 노력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갤러리를 개설하자마자 반발이 컸는데.

"첫날에만 수천건의 게시물이 올라왔는데 90%는 욕이었다. 일종의'아웃사이더'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입장에선 자신들의 영역을 정치인 침범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 아웃사이더라고 했다고 욕먹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웃음). 그렇다고 일부에서 말하듯 '교화하러 왔다'느니 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인터넷이란 공간에서 일방적인 홍보는 불가능하다. 단지 진솔하게 소통해보려는 시도다. 계속 노력하다보면 오해도 줄어들고 언젠가는 나아질 것이다. 처음보다 지금은 좀 나아진 것 같고, 앞으로 더 나아질 거라고 기대한다. 아마 다른 정치인 갤러리가 생기면 좀 나을 것 같은데…내가 하도 욕을 먹으니까 겁을 먹고 아무도 안 오는 것 같다(웃음)"

-386세대 정치인에 대한 거부감을 갖는 네티즌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

"상대적으로 봐야 한다. 386출신 정치인들이 기득권층이 됐다거나 권위주의에 물들었다는 것은 내가 보기엔 객관적인 평가가 아니다. 17대 국회 들어 정부 제출안보다 국회제출안 많아졌고 훨씬 탈권위적으로 변했다. 연구하는 의원이 늘어났고 현장과도 가까워졌다. 이런 문화를 젊은 정치인들이 이끌고 있다. 물론 더 노력하라는 질책이라면 달게 받겠다."

-열린 우리당 당원 게시판을 놓고도 비슷한 논란이 있다.

"인터넷 문화라는 게 본질적인 문제 깊이 들어가기 보다는 가볍고 자극적인 경향이 크다. 대표적인 것이 디시인데… 예컨데'세줄 요약'같은 것 말이다. 그러다보니 마녀사냥식 여론이 형성되는 경우가 많고 이를 오프라인 신문까지 옮기니 본질은 사라진 뉴스가 나오고 하는 것이다. 이제는 사용자들도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부작용을 어떻게 줄여갈지 고민해야 한다"

-본인으로선 억울한 비방도 있었을텐데 인터넷 실명제에 대한 견해는.

"모든 사이트에서 일률적으로 실명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반대다. 부작용을 줄일수는 있겠지만 자칫 참여라는 순기능 자체를 억제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자체적으로 자정능력 키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네티즌의 정치적 성향 분포가 지난 대선이나 탄핵때와 달라졌다는 지적이 있다.

"그런 것 같다. 여야 정권교체가 이뤄진지 벌써 7~8년이 되고, 이슈도 다양해지다 보니 예전에 수구냉전세력에 한 목소리로 저항하던 목소리들이 점차 분산되고 있는 것이다. 어찌보면 균형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라 보인다. 우리로선 위기감 가지고 더더욱 노력할 필요가 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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