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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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나에게는 딸자식밖에 없으니 시어머니 되기는 틀렸다. 바꾸어 말해 우리 부부는 앞으로 며느리를 맞아들이는 기쁨을 맛보지 못할 것이고, 좀 뭣한 이야기이긴하나 덕분(?)에 나는 지독한 시어머니 소리를 들어가며 며느리 가슴을 멍들게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시부모 안계신 집안과 인연을 맺어 고부간의 갈등도 모르고 살고 있다.
이런 연유로 해서 나는 가끔씩 내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고부간의 언짢은 일화를 객관적으로 관찰하게 된다.
사실 사방 뺑뺑 둘러보아도 내 주위에서 『우리 시어머니 참 좋으시다』고 말하는 이가 거의 없다.
내가 여러모로 본받고 싶고, 또 사회에서 존경받는 몇몇 여성들도 혹 시어머니이야기가 나올 것 같으면 우선 머리부터 좌우로 흔들곤 한다. 한편 친정 어머니친구분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어봐도 대개는 마찬가지다.
그러잖아도 노후도 서글픈 터에 며느리에게서 느껴지는 소의감, 며느리따라 자꾸 변해가는 아들의 무관심등으로 하여 말끝마다에 섭섭함이 맺혀 있으니 말이다.
시누이들은 시누이들대로 결혼을 했거나 안했거나간에 올케가 틀렸다고 입을 비죽거리며흉보기 일쑤고, 친정 어머니들은 그들 나름대로 『글쎄, 우리 큰딸 시어머니는 말이예요』로 시작해서 딸들이 겪는 시집살이의 설움을 본인의 설움인양 줄줄이 엮는다.
그럴때 보면 이 시누이는 흡사 본인이 바로 몹쓸 올케로, 버릇없는 며느리로 시집 식구들의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이 틀림없고, 딸애를 두둔하는 모정에 넘친 친정어머니 역시도 당신의 며느리에겐 당신이 가장 모시기 힘들고 까다로운 시어머니로 간주되고 있다는 사실을 필시 잊고 있는 모양이다.
며느리가 통 시부모를 안 찾아 본다고 시어머니는 쉽게 섭섭해 하지만 막상 본인의 딸이과연 얼마나 시집의 일원으로 동화하여 시부모에게 따뜻하게 대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일에는 무척 게으르게 마련이다.
반면 우리는 오라버니댁이 친정 어머니께 섭섭히 해드린다고 쉽게 분노를 터뜨리지만 나는 과연 며느리로서 시댁식구에게 얼마나 많은 섭섭함을 끼쳐 드렸는지 반성하는 기회가 극히 드물지 않는가.
물론 우리가 입만 벌리면 불평하는 것도 아니고, 또 어쩌다 이렇게 불평을 털어 놓으므로 체증이 풀리듯 마음이 가벼워지는 임상학적 효과를 가져오는 점 없잖아 있을줄 안다. 그러나 발없는 말이 천리를 달리게 마련이다. 언젠가 무심코 했던 말이 한입두입 거쳐가는 동안의외로 불미스런 평지 풍파를 일으켰던 때를 많은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고보면 역시 침묵이 금인가 보다. 말없이 서로 감싸주고, 탓하고 싶을 때 먼저 감사하는 마음가짐을 키워나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며느리의 설움을 몸소 치러보지 못한 이의 이론에 불과할까? <서울강남구압구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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