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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경영이 노조 마음 움직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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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지난해 6월 한국전기안전공사 노조 위원장은 삭발 투쟁에 들어갔다. 열린우리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출신이 사장으로 내정됐다는 발표를 접하고 나서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난달 3일. 전기안전공사 노조는 공기업 노조로는 처음으로 사장과 본사를 지방으로 이전한다는 데 합의했다. 다른 공기업 노조가 지방 이전을 반대하며 경영진과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고 있을 때 전기안전공사 노조의 결정은 뜻밖이었다.

'낙하산 인사'라는 오명을 쓰고 취임한 뒤 1년만에 노조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경영자로 거듭난 송인회 사장(53.사진). 그는 비결을 "거짓말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송 사장은 취임하자마자 경영 투명성을 높이는 일부터 시작했다. 사장의 고유 권한 150개 가운데 90개를 하부로 넘겼다. 젊은 사장이란 프리미엄도 작용했다. 그는 환갑 이전에 취임한 최초의 전기안전공사 사장이었다. 정치인 출신이라지만 그는 범양상선에서 기획실장까지 역임했고, 자기 사업도 해봤으며, 공기업 경영 평가를 전공한 박사이기도 했다.

경영이 투명해지니 업무 혁신의 속도는 자연히 빨라졌다. 전기안전공사는 법정 검사점검기관으로는 처음으로 검사업무 리콜제도와 전기안전 스피드콜 제도를 도입했다. 리콜은 고객이 검사업무에 만족할 때까지 다시 서비스를 해주는 제도이고, 스피드콜은 전기 안전에 문제가 생길 경우 직원이 비상출동해 응급조치를 해주는 '전기안전 119제도'다.

혁신의 결과 전기안전공사는 최근 한국소비자포럼으로부터 '2005년 한국소비자의 신뢰기업' 대상을 수상했다. 기획예산처가 주관하는 공공기관 혁신 진단에서도 전체 212개 기관중 상위 16% 안에 들었고, 비수익기관 50개 중에선 1위를 차지했다. 특히 기관장 평가에서는 3개 항목 모두 1등을 휩쓸었다.

신뢰를 얻고 나니 본사의 지방 이전에 노조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도 가능했다. "이왕 가야 한다면 우리가 먼저 솔선수범해 실리를 챙기는 게 낫지 않으냐. 지방으로 가더라도 대도시에 가서 푸대접 받느니 중소도시로 가 칙사 대접을 받는 게 어떠냐고 노조를 설득했다. 처음엔 주저하던 노조도 이내 수긍을 했다."

송 사장은 21일 취임 1주년을 맞아 '경영 혁신 2기'를 선언했다. 이번에는 공사에 탄탄한 수익 기반을 닦는 게 목표다. "전기안전공사는 직원이 3000명인데 연간 매출은 1700억원밖에 안 된다. 공사가 보유한 기술력과 장비를 활용하면 얼마든지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확보할 수 있다."

송 사장의 희망은 임기가 끝나는 2007년 6월 기획예산처의 공기업 경영실적 평가에서 1등을 하고 물러나는 것이다.

◆ 전기안전공사는=산업자원부 산하기관으로 지난 1974년 설립됐다. 직원은 본사(서울) 288명을 포함해 모두 2876명이다. 업무는 ▶대형공장 등 자가용 전기설비에 대한 검사▶주택 등 일반용 전기설비에 대한 점검▶공장, 빌딩 등 자가용 전기설비에 대한 안전관리대행▶전기안전에 관한 조사.연구 및 기술개발 등이다.

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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