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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조작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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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해 12월 복서 김환진은 챔피언방어전을 엿새 앞두고 『상대는 체격이 약해 어렵지 않다』고 호언했었다.
링위에서의 결과는 정반대였다. 김환진은 시원한 주먹 한번 날려보지 못하고 시종 스피드, 테크닉, 체력이 모두 상대인「도까시끼」에 뒤져 심판 전원일치의 15회 판정패를 당했다. 1백50일만의 최단명 챔피언의 기록을 남긴, 치욕적인 순간이었다.
당시 국내에서는 패인이 결전을 앞두고 결혼식을 울리는 등 정신력이 이완된데다 연습마저 부족했던 점을 들었다.
그러나 최근 일본의 한 주간지는 그 패인을 다른데서 찾는 폭로기사를 실었다. 다름아닌 일본프러모터측의 약물주입설이 그것이다. 오린지에 주사기로 약물을 삽입했다는 것이다.
김환진이나 관계자들은 오린지를 먹은 기억이 없어 약물중독에 의한 패배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으나 그런 후문이 나온 것 자채가 중대한 문제다.
말썽의 장본인인「도까시끼」의 프러모터는 말없이 프러모터자격증을 반납하고 복싱계를 은퇴했으나 문제의 주간지는 계속 제2, 제3의 약물주입 흑막을 폭로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프로권투의 약물중독설은 유제두때도 있었다. 76년 2월「와지마」에게 WBA주니어미들급 챔피언자리를 내준 유제두가 한국에 돌아와 『손과 발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아 무엇엔가 중독된 것 같았다』고 술회한 것이다. 유는 뒤에 그 발언을 취소하는 등 엎치락뒤치락이 몇번 있어 국내 권투팬들에게 씁쓸한 뒷맛을 남기기도 했다.
약물중독은 널리 알려진 프로권투의 배후 승부조작술의 하나다. 사실 프러모터끼리의 뒷거래만 성립되면 약물까지 동원 안해도 된다. 「알리」와 「리스튼」과의 64년, 65년 대전이 대표적인 예. 「리스튼」은 이때 『어깨뼈가 빠진 것 같다』며 어이없이 KO패 당했다.
의회의 조사까지 있었으나 후문은 없었다.
승부조작은 거액의 도박금이 걸렸다거나 금품공세가 있을 때매 이루어지며 마피아 같은 범죄조직이 개입될 때도 있다.
「헤밍웨이」의 단편소설 『살인자들(The Killers)』에 보면 패하기로 한 약속을 깬 권투선수가 청부살인자들에게 쫓기는 절박감을 그리고 있다.
프로권투가 계속 팬들의 애호를 받으려면 이런 흑막이 걷혀져야 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당장 급한 일은 프러모터의 자질이 향상돼 「언페어」플레이 방법을 사전에 봉쇄할 수 있어야한다.
승부조작이 권투에만 한정되지 않고 프로경기 전반에 걸쳐 일반화된 현상이라는 뒷공론도 없지 않고 보면 과연 프로는 스포츠맨십과 결별하려는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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