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군배정의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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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해마다 서울시교위는 고교신입생 배정문제로 곤욕을 치른다. 연례행사처럼 된 학부모의 항의소동은 금년에도 예외없이 일어났다.
단일학군인 서울여의도지역 학부모들은 얼마전 위장전입자들 때문에 그들의 자녀들이 다른 학군으로 밀려났다고 집단항의까지 했었다.
당국의 조사결과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중·고생 가운데 거주지를 허위로 꾸며 위장전입한 뒤 이른바 신흥명문교에 들어오는 학생이 전체 신입생의 5∼7%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위장전입자 때문에 원거주자의 자녀들이 다른 학군으로 밀려나니 그들의 항의는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이른바 명문교로 배정받기 위해 주민등록을 옮기는 학부모들의 처지도 나무랄 수만은 없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여의도에만 있는것이 아니다. 가령 남자고교의 학군이 좋다고 알려진 서울강남지역은 작년만해도 진학자와 학교에서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이 비슷해서 별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금년들어서는 남자의 경우 1천2백여명이 넘쳤고 여자는 7백여명이 모자라는 기현상을 보였다.
소위 명문남자고교가 많다해서 여의도처럼 위장전입자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위장전입자로해서 상당수의 원거주학생이 타학군으로 밀리게 되고 이에 따라 연쇄적으로 학생들의 학군이동이 불가피해진다. 뭔가 잘못되어 있는 것은 틀림없다.
그렇다고해서 추민등록을 한곳에 그학생이 실제로 거주하는지를 확인할 권한을 교위가 갖고 있는 것도 아니며, 설혹 적발을 했다해서 제재를 가할 아무런 근거도 없다.
이른바「새치기 신인생」이 생기는 까닭이 학교간의 차이때문임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일류대학에 많은 학생을 입학시키는 고등학교에 자녀를 입학시키고 싶어하는 학부모의 심정은 이해할만 하다. 또한 우수한 학생들이 많은 학교에서 마음껏 실력을 겨뤄본다는 것은 향학열에 불타는 학생으로서는 당연히 취해야할 태도이기도 하다.
학부모들의 항의에 교위는 『내년부터 거주지확인으로 개선하겠다』고 밝혔다지만 이러한 방침은 하나의 궁여지책일 뿐 문제해결의 정도라고는할 수 없다. 위장전입이란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 생기는 가장 큰 이유는 결국 학교간의 차이 때문이다. 그것은 곧 고교평준화시책이 실패했다는 하나의 무력한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우리가 기회있을 때마다 지적한대로 학교차를 없앤다는 일이 이론상으로는 몰라도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학교시설이나 교사의 차이는 물론 학생의 평준화도 사실은 되지 않고 있다. 최근의 어느 보도를 보면 컴퓨터에 의한 배정마저도 고르게 되지 못한 것이 드러났다고 한다.
문교부가 고교내신성적의 반영율을 해마다 높이려 한것도 평준화시책이 안고 있는 이같은 모순을 커버하겠다는 뜻을 담은 것이었지만 한마디로 그것은 모순을 가중시켰을 뿐 문제의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근본원인은 딴데 있는데 지섭적인 것을 놓고 궁리를 하고 논난을 벌여봤자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평준화시책」의 실패를 솔직이 인정하고 보다 합리적인 방안을 차근차근 모색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 아니겠는가.
현 단계에서 그것이 어렵다면 학군때문에 빚어지는 항의소동만이라도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한다.
서울시교위가 얼마전 건의했다는 방안, 즉 평준화지역의 고교입시제도를 현재의「무작위컴퓨터배정」에서 연합고사성적에 따른 학군별 선지원·후배정으로 바꾸는 개선방안도 진지한 검토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당국자의 말마따나 본인의 희망과 능력에 따라 학교가 배정되므로 통학거리, 배정학교 등에 대한 학생·학부모의 불만이 해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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