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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으로 옮긴 전직고관들…특우 잘 받지만 "격무"의 나날|관록·기술·면직 밑천 유입 또는 낙하율 참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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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최근 몇 년 동안 관에서 민간기업으로의 대이동이 있었다. 자의로 타의로 관을 떠난 많은 사람들이 혹은 영인되거나, 혹은 관의 프리미엄을 엎고 기업경영층에 참여한 것이다. 아무리 민간주도 경제가 강조돼도 민간기업에 대한 궁의 영향력은 아직도 막강하다. 또 관에서 쌓은 관록과 기술·면직도 대단한 경여자산이다.
기업으로선 그것이 필요하고 또 현직들의 은근한 요청도 있다.
어느 기업주의 말을 들어보자. 『관에서 온분중엔 우수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은 서로 모셔가려고 경쟁이 붙지요. 그러나 낙하율식으로 받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제몫을 못할 뿐 아니라 조직에 장애가 될 때가 있습니다. 이때 추천한 사람이나 본인은 섭섭해 하고 「단물 다 빨아먹고는 발로 찬다」는 비난도 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척 신경이 쓰입니다. 관에서 기업으로 갈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격을 맞추는 것 같다.
최근의 사례를 보면 장관출신은 고문이나 회장직을, 차관보는 사장이나 부사장, 국장은 부사장이나 전무, 과장은 상무나 이사로 가는 것이 일반적인 격처럼 되어있다.
관이나 금융계 모는군에서 기업으로 전신한 사람의 장래는 「본인하기 나름」이다. 관프리미엄도 처음 얼맛동안이고 곧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작년하반기이후 기업으로 옮긴 외부인사들에 대한 평들이 벌써 조직내에서 광범위하게 나돌고 있다.
어느 재벌그룹회장은 『경영인으로 전신한 외부인사중에는 금융계사람들의 적응이 가장 빠르고 관계도 생각보다 잘 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비단 기업뿐만 아니고 어느 조직이나 비슷하겠지만 외부영입인사들에게는 다소 배타적인 것이 우리네 생리다.
기업으로 옮긴 외부영입자들은 한결같이 『기업이 생각보다는 타이트하고 기업인들이 참 열심이다. 항상 긴장하고 열심히 뛰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최근 기업사장으로 일한바 있는 나웅배씨가 재무장관으로 입각하면서 간부회의가 1시간이 빨라졌다는 것도 이를 말해준다.
관계에서 기업으로 옮긴 중역들은 일이 고달프기는 하지만 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보수를 받는다.
행정부과장(서기관 15호봉)의 경우 월봉(판공비·정보비 등 제외)32만원 정도지만 대기업이사는 1백20만원, 상무는 1백50만원쯤 받는다.
국장(이사관 20호봉)은 45만원쯤 받다가 기업체전무로 가면 1백80만원, 차관보는 55만원쯤 받다가 사장이나 부사장으로 옮기면 2백만원을 훨씬 웃돌게 받는다. 판공비나 정보비도 정부에서는 20만원(서기관)∼50만원(차관보)쯤 받지만 기업으로 옮기면 부족하지 않을만큼 쓸 수 있다.
부탁받던 입장에서 하는 입장으로 바뀐 것을 경제적으로 보장받는 것이다.
2월말 주총을 기해 각계에서 물러난 인사들이 거의 자리를 잡았다.
전경제각료들만 보더라도 신병현 부총리가 무역협회장으로, 박봉환 동자부장관이 증권감독원장으로 옮겼으며 이승윤 재무장관도 대사수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에 기업에 진출한 관계인사들을 주요 그룹별로 보면 대우와 한양이 특히 많다.
삼성
남북조절위사무국장을 지낸 이동복씨를 그룹고문으로, 서울시지하철본부장 김명년씨를
삼성종합건설부사장, 재무부증보국장 한동우씨를 전주제지전무로 영입했다.
현대
조달청기획관리관을 지낸 이균재씨를 현대건설전무로, 기획원조사통계구장 강흥구씨를
현대중전기전무로 영입했다.
또 건설부산하 한국종합조경공사부사장을 지낸 김용석씨를 현대종합기술개발부사장으로 영입.
대우
상공부 중공업차관보를 지낸 김동규씨를 (주)대우사장으로, 제일은행상무 김영규씨를 동양증권사장으로 영입하는 등 작년이후에만 모두 10여명의 외부인사를 중역으로 받았다.
박충훈 전 총리비서실장을 지낸 박근효씨가 대우부사장겸 비서실장을, 한은이사 주은식씨가 작년 8월 대우전무로 갔다가 올2월에 대자중공업부사장으로 승진.
또 재무부국세심판관 유향석씨가 그룹기획조정실상무, 대통령경제비서관 유회민씨가 대우상무, 건설부서울국토관리청장을 지낸 윤영탁씨도 대우상무로 옮겼다.
외환은행건축본부기술실장 강기세씨가 동우건축상무로, 예비역 육군대령 김성기씨가 대우조선이사로, 상공부수입국장을 지낸 엄길용씨가 대우상무로 옮겼다.
이밖에도 현대경제일보 판매국장을 지낸 김당기씨를 동양증권이사로 영입했다.
럭키
올들어 경제기획원 경제협력차관보 차화준씨를 범한해상화재보험사장, 경제기획원 예산심의관 박종근씨를 금성사전무로, 국제경제연구원 제일겸씨를 그룹 기획실 상무로 영입했다.
럭키는 80년 초달청과 주일대사관에서 이사관을 역임한 박정수씨를 금성전선전무로, 국방과학연구소교수 강린구씨를 금성통신상무로, 산은출신 이동진씨를 국제증권이사로 받아들인바 있다.
또 육사12기 김영호씨도 지난해 럭키그룹에 입사, 금성정밀사장을 맡고 있는데 경제기획원 경제협력차관보 최선내씨도 79년 금성사에 들어가 올해 금성계전사장에 올랐다.
한양
건설회사들이 일반적으로 외부인사를 비교적 많이 영입했지만 특히 한양이 두드러진다.
동자부장관 양윤세씨를 그룹고문으로, 농수산차관 남욱씨를 한양유통고문으로 위촉했다.
또 상공부섬유국장 이만용씨를 한양부사장으로, 건설부산업입지국장 유호문씨를 새로 인수한 대한준설공사 대표이사전무로 영입했다.
서울시도시계획국장 김병린씨를 한양전무로, 산업기지개발공사이사 김려택씨도 한양전무로, 건설부출신들인 김영환·송준호·정근택씨를 각각 상무로 영입.
서울시에 근무했던 정광동씨도 한양이사로 옮겼다.
그밖의 그룹들
삼환기업이 최석원건설부차관을 고문으로, 코오롱건설이 홍순념건설부해외국장을 사장으로, 한보주택이 국립지질원장 전경우씨를 이사로 맞았으며 금호는 교통부육운국장을 지낸 서인수씨가 건설사장을 맡고있다.
국제는 내무부 치안국장과 국회의원을 지낸 조흥만씨를 원풍산업 사장으로 영입했으며, 쌍룡도 관세청장을 지낸 김재현씨를 쌍룡종합건설사장에, 재무부 기획관리실장 고병우씨를 쌍룡중공업 사장으로, 동자부 석유국장 김희술씨를 쌍룡정유전무로 영입했다.
한국화약그룹은 재무차관을 지낸 조충훈씨를 제일화재사장으로, 상공부국장을 지낸 최용은씨를 동사부사장으로 영입했다. 또 국방부방산국장출신인 최병진씨를 한국화약부사장으로 영입했다.
전 재무부재정차관보를 지낸 이용만씨는 여러 그룹에서 탐을 냈으나 본인은 중앙단자사장이란 조촐한 자리를 선택했다.
관계·금융계 등 외부인사의 영입을 조직의 활력소로 삼을 수 있느냐는 것은 기업의 새로운 과제다. <박병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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