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조심…「발언수립」「단문단답」풍성|국회대정부질문 단상도 단하도 조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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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닷새동안 계속된 국회본회의의 대정부질문이 6일로 끝난다.
각 정당과 의원들이 현실을 어떻게 보고 무엇을 문제로 생각하는지, 각 정당의 올해 설계는 어떤 것인지…등믈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기회라는 점에서 이번 대정부질문은 관심을 끌
었다.
또 작년부터 시도돼 온 국회운영스타일의 개선이 과연 시험기를 거쳐 이젠 「본격가동기」에 들어섰는지도 관심사였다.
○…24명의 여야의원과 총리 이하 거의 전국무위원이 나선 국정문답의 결과 드러난 가장 큰 쟁점은 △정치피규제자의 해금문제 △각종 개혁입법의 개정문제.
이 두쟁점은 사전에 짠 작전대로 야당측 발언자가「중복발언」의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줄기차게 거론한 반면 정부-여당측 역시 「해금불가」「개정불가」의 일관된 논리로 응수.
개정을 주장한 야당의 논지는 『개혁입법이기 때문에 개선할 수 없다는 것은 논리의 모순이자 개혁자체를 모독하는 것』(윤석민·국민), 『국민의 피해와 불편을 없앤다는 개혁의 취지에 어긋난 것』(김현규·민한)이라는 것 등.
친지들까지 "말조심"
특히 정치활동피규제자 해금논의는 인정론에서부터 법리론까지 나왔다. 김현규의원은 『우리의 정치가 과도기에서 조속히 벗어나기 위해 풀어야한다』고 했고 윤석민의원은 『정치인의 규제는 국민의 선택에 의해 자율적으로 해야한다』고 주장.
또 김형래의윈(민한)은 『투자해 키워놓은 인재를 썩이지 않기 위해』, 목요상의원(민한)은 『소급입법에 의해 참정권을 제한하는 것이 헌법정신에 위배되기 때문』이라고 지적.
국회법·선거법·지자법개정은 정치활성화와 민주주의의 토착화라는 측면에서 설명됐다.
그러나 『개혁입법은 당분간 못 고친다』는 방침을 정해놓고 있는 민정당이 외면하고 정부측이 단호히 행정적답변을 함으로써 쟁점은 야담의 한갓「외침」으로 끝난 느낌. 따라서 이 두문제는 표면상 국회서의 토론이 있기 전이나 있은 후에나 마찬가지가 된 셈.
○…의윈들은 단상단하에서 대체로 지나친 웅변도, 불만의 고함소리도 없는 그야말로「고요한 아침의 나라」같은 자세로 일관했지만 완곡하게나마 짚고 따지려는 노력은 전보다 두드러졌다는 게 중평.
야당의원들은 『발언시간 30분 동안 면책특권을 가진 이 사람이 과연 어느 수위까지 얘기를 해야할지 참으로 고민이 많다』는 김형래의원의 말이 대변하듯 발언 수위의 설정문제에 가장 고심.
신순범의원(의정)도 『국민을 대표하는 국힉의원이 정부에 질문하겠다는데 말조심하라는 친지들의 권고와 염려가 어찌 그렇게 많은지…』라고 푸념하면서 『전남도민의 마음을 풀어줄 선무책』을 촉구.
나는 입만 빌려줬다
윤석민의원(국민)은 고심 끝에 대표질문에서 『대통령은 정당을 초월한 영도자가 되어달라』고 초점을 흐린제의를 했다고 털어놓았는데 나중에『의원내각제를 하자는 것이냐』는 핀잔을 민정당측으로부터 들었다.
아직도 「각도를 달리하지 않은」중복발언이 없지 않았지만 저질·인기·폭로발언은 사실상 거의 자취를 감춘 인상. 이번에 특히 논란이 된 중복발언에 대해 야당은 『강조할건 계속 강조한다』는 방침이고 이재형 민정당대표의원도 『같은 문제라도 전혀 관점을 달리하여 질문한다면 정부는 그 점에 대해서는 답변해야할 것』이라고 말해 아직은「정설」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
○…『대정부질문이 뭣인가를 보여주겠다』고 벼른 민정당은 단문단답을 원칙으로 세심한 사전 준비.
특히 나석호 정책위의장의 대표질문만은 당을 대표한다는 뜻에서「모범답안」을 만들기로 하고 질문항목의 선정과정에서부터 거당적인 지혜를 동원했다.
수차에 걸친 수정 끝에 완성된 원고는 지난1일 밤9시반까지 계속된 사무총장·원내총무·정책위의장회의에서 다시 대폭 손질되어 발언자인 나의장이 『나는 입만 빌려줬다』고 실토할 정도로 「범탕」이 되어버렸다.
그래서인지 모자이크식·나열식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후평을 들었다.
민한당은 이른바 쟁점이 적고 손쉬우면서도 야당의 이미지를 부각시킬 수 있는 것을 다룬다는 3단계 원내전략에 따라 모든 질문자들이 정치문제를 이슈로 들고나오는 올 코트 프레싱전법을 구사.
민한당은 정치문제를 집중거론함으로써 비록 정치의안의 통과까지는 이르지 못한다하더라도 국민들에게 「해금」「개정」이라는 정치이슈를 부각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국민당도 윤석민 부총재의 대표질문만은 「시」보다는 「비」쪽에 강도를 두고 작성.
발언순서가 1번이라는 점에서 민한당이 제기할 것으로 예상되는 정치문제들을 먼저 제기해버려 예상을 뒤엎고 전례없이 수위가 높았다는 평도 들었다.
○…이번 국회에서 처음으로 답변솜씨를 보인 유창순 총리의 답변태도는 과거에 비해 짧고 단호해진게 특색. 과거 남덕우 총리는 유신시대의 인물이어서 여야모두의 공격대상이 된 적도 있었지만 유총리는 『현상황이 탄압과 권력남용의 상황이었다면 이자리에 서있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할 정도로 정부고위관리로서는 드물게 구시대의 1인장기집권·고도성장의 부작용을 신랄하게 비관.
이러한 유총리의 자세에 대해 민정당측에서는 『개혁의지가 충만해서 좋았다』고 호평을 했으나 야당측으로부터는 『자신의 입장 하나만 가지고 시국을 천하대꾸이라고 논하는 것은 바늘구멍을 통해 하늘을 쳐다보는 격』(김형래·민한)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이따금 오고간 쪽지
유총리는 중복질문에는 답변 않는다는 정부-여당의 방침에 입각해 3일 정치·외교·안보분야에 관한 2시간의 질문에 『대표질문에 답변했다』『앞으로 사회문제질문 때 말하겠다』는 식으로 10분간만 답변, 야당측이 들고 일어나기도 했다.
그래서 4일 본회의 벽두에 해명발언을 하기로 한 유총리는 『국회에서의 답변은 성의를 가지고 요점만 간명하게 하고 중복을 피하는 것이 정부의 입장임은 물론 국회도 바라는 바』라면서 『이것이 국가적으로도 이익이 된다는 충정에서 한 말인데 오해가 있으면 양해해 달라』고 막상「양해」아닌 단답방침만 오히려 강조.
단답에 대해선 야당측이 불성실로 몰 가능성도 있어 한 정부관계자는 『단답으로 의원들에게 나쁜 인상을 줄까봐 길게 하고도 싶지만 그럴수가 없다』고 실토.
이광표 문공장관은 「제3공화국」연재중단 문제에 대해 『언론의 자율적 결정』이라는 똑같은 답변으로 시종했는데 김형래의원은 『온 국민이다 아는 문제를 그런 식으로 답변하면 정부의 공신력을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이번 질문도중 정래혁 국회의장은 전에 없이 자주『국회자율권에 속하는 문제는 정부측에 질문을 삼가달라』(2일대표질문때와 3일 본회의 벽두) 『중복발언은 삼가달라』(4일 의사진행발언 후)는 등 주문을 해 정부여당방침을 뒷받침. 그래서인지 가끔 민정당 당직자석에서 쪽지가 정의장과 정종택 정무장관에게 전달되는 모습도 보였다.

<전육·이수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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