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자 김성룡의 사각사각] 노래 않고 파리 쫓는 턴테이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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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음악 듣기를 참 사랑하는 분이셨습니다. 고상한 클래식이나 세련된 팝이 아닌 ‘뽕짝’이라고 부르는 전통가요를 즐겨 들으셨죠. 제가 어렸을 적 아버지는 늘 볼륨을 잔뜩 올려놓고 집안이 떠나가라 음악을 감상하셨습니다. 그런 조기교육(?) 덕분에 지금도 가요무대에 나오는 웬만한 노래는 따라 부르는 데 어려움이 없습니다.

아버지의 재산 1호는 당연히 턴테이블 위에 LP판을 올리는 ‘전축’이었습니다. 이사를 할 때도 전축만은 이삿짐 운반 차량에 싣지 않고 신주단지 모시듯이 당신이 짊어지셨던 기억이 납니다. 시간이 흘러 음악을 감상하는 기기도 달라졌습니다. 턴테이블, 카세트 리코더, CD 플레이어, mp3 플레이어, 또 스마트폰으로 바뀌는 사이 아버지가 애지중지하던 전축도 집안에서 자취를 감췄습니다. 이제 전축은 황학동 벼룩시장이나 일부 클래식 애호가의 집에서나 볼 수 있는 귀한 물건이 됐습니다.

전혀 예상치못한 장소에서 턴테이블을 만났습니다. 강원도의 한 재래시장 생선 좌판에 턴테이블이 있었습니다. LP판을 올려놓고 바늘 끝으로 음악을 읽어내던 그 턴테이블이, 긴 팔 늘어뜨려 고등어와 우럭을 향해 달려드는 파리를 쫓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돌아가는 턴테이블을 보고 있자니 그 옛날 아버지의 십팔 번, 윤일로의 ‘항구의 사랑’ 마지막 소절이 귓가에 들려왔습니다.

‘울어 봐도 소용없고~ 붙잡아도 살지 못할 항구의 사랑~ 영희야 잘 있거라~ 영희야 자~알 있거라~~~.’

김성룡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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