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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신보, 벤처 묻지마 보증 1조원 이상 물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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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2001년 벤처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도입한 2조2000억원 규모의 프라이머리 CBO(회사채 담보부증권) 중 절반 정도가 부실화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프라이머리 CBO를 발행할 때 보증을 섰던 기술신용보증기금이 총 1조원가량을 대신 물어줬거나 앞으로 물어줘야 할 상황에 처했다.

감사원은 21일 기술신용보증기금에 대한 '중소.벤처기업 보증.보험 지원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감사 결과 808개 벤처기업에 지원된 기술신보의 프라이머리 CBO 보증금액 중 기업의 부도 등으로 손실처리된 금액이 5월 20일 현재 8026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은 앞으로 기업들의 추가 도산으로 손실액이 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기술신용보증기금의 재원이 거의 소진된 상태여서 추가 손실액을 물어주려면 올해 말까지 3594억원이 부족할 것으로 분석했다.

벤처기업에 지원된 프라이머리 CBO는 신용도가 낮은 회사채들을 모은 뒤 기술신보의 보증을 통해 신용도를 높여 자금을 조달하는 금융기법이다.

구체적인 부실화 사례로 기술신보는 717개 기업에 대해 기술평가도 거치지 않은 채 2조1039억원의 보증지원을 했다고 지적했다. 이 중 341개 기업이 도산해 6921억원을 기술신보가 대신 물어줬다.

감사원은 도산한 기업 가운데 71개는 신용평가 결과 보증이 곤란한 기업이거나 기술평가점수 미달 기업, 전회차 지원대상에서 탈락한 기업 등 지원이 부적절한 기업들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또 지원 기업들에 대한 사후관리도 미흡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감사원은 총 1911억원을 지원받은 48개 기업은 지원받은 자금을 주식 투자, 부동산과 골프회원권 매입, 자금 해외 유출 등 지원목적과 다른 용도로 756억원을 유용했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A회사는 2001년 10월 프라이머리 CBO 자금 90억원을 지원받은 직후 40억원을 주식투자에 사용했다.

이 중 총 916억원을 지원받은 31개 기업의 사업주는 부도가 나기 전후 소유 재산(103억원)을 매각하고 해외로 도피 혹은 이민을 했는데도 기술신보는 이러한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전년도 매출실적도 전혀 없는 B회사의 대표이사는 174억원의 보증지원을 받아 이 돈으로 10억원 상당의 부동산, 2억원짜리 골프회원권을 구입한 뒤 회사가 부도나기 직전 부동산 등을 매각해 싱가포르로 출국했다.

감사원은 프라이머리 CBO 보증제도의 방만한 운영에 대한 책임을 물어 당시 기술신보 이사장이었던 이근경 전남 정무부지사를 검찰에 고발조치하고 관계자 17명에 대한 문책을 요구했다. 이와 함께 감사원은 지원 자금을 유용한 48개 기업체를 고발토록 기술신보 이사장에게 요구했다.

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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