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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인간가족|혼자 사는 사람|서울 성북구 안암아파트 시인 박희진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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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7면

현대사회로 접어들면서 혼자 사는 독신인구가 늘어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가 되고있다.프렌치가이아나를 선두로 해서 독신남성인구가 많은 비율을 따지면 우리나라는 1백14위. 다른 나라에 비해 아직 많은 숫자는 아니나 최근 조사에서 20대 남녀사이에 독신을 주장하는 사람이 많고 보면 우리나라도 당연한 추세로 독신생활이 받아들여지는 것같다.
특히 미술이나 문학·무용등 창작활동을 하는 사람 가운데 독신이 많다.

<누구의 방해도 받기싫어>
혼자 사는 이유야 10인10색이지만 이들가운데 누구의 방해도 받지않는 「혼자의 생활」 이 창작활동에 도움을 준다는 의견을 가진 이가 많다. 「니체」나 「쇼펜하워」「칸트」「브람스」「베토벤」「고호」등 구태여 역사적 인물을 따지지 않더라도 「혼자 사는 생활」이 사색이나 창작활동에 도움을 주는 것은 분명하다.
오늘은 종일 잘못 걸려오는 전화도 없어라.
동거자라곤 파리와 쥐와 바퀴벌레뿐,
문득 파리를 귀엽고 작은 새라고 생각한다.
십오평 공간은 그대로 크나큰 새장이고.
시인 박희진씨(50)의 4행시 『아파트독거』에서 보듯 혼자 사는 생활은 화려한 생활이 아니고 삭막한 생활이다.
20대부터 혼자 살겠노라고 했다는 박희진씨는 그때부터 『나는 혼자 살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왔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남의 방해받는 것을 싫어했을 뿐더러 스스로의 성격이 무척 폐쇄적이라고 분석해준다.
그가 완전한 혼자의 생활을 시작한것은 11년전부터. 이전에는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경기도 연천에서 태어난 박씨는 중학교때부터 서울에서 살았다. 55년고려대영문과 졸업이후 60년부터 동성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으며 60년대 「사화집」 동인.
교직생활 10여년만에 15평짜리 아파트(안암아파트)를 샀고 그이후 그는 자신의 표현처럼『학교와 집을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하는 생활을 시작했다.

<호주머니에 콩나물봉지>
아침 7시에 일어나면 아파트안을 우선 말끔히 청소한다. 빵두쪽을 굽고 코피 한잔을 끓이고 과일이 있으면 과일, 야채가 있으면 야채를 곁들여 간단하게 아침식사. 점심은 학교 구내식당에서 해결하게되는데 식사로 따져 가장 푸짐한 한끼가 된다. 남이 차려주는 밥을 먹는 유일한 한끼이기도 하다.
학교가 끝나면 시장엘 들러 집으로 온다. 남이 보면 알뜰한 애처가로 생각하겠지만 그는 시장에 가서 물건사는 것이 가장 싫다. 콩나물이나 시금치를 살때 장바구니 대신 비닐봉지를 미리 마련해서 거기에 담아 포키트에 그냥 쑤셔넣고 집으로 간다. 매식은 일체 하지 않는다. 화려한 레스토랑의 값비싼 정식이라면 몰라도 혼자서 설렁탕이나 비빔밥을 사 먹는다는 게 얼마나 을씨년스러우냐는 것.
미역국이나 콩나물국을 끓이고 시금치무침에 김을 구우면 훌륭한 저녁 한끼.
전기밥솥에 쌀을 씻어넣고 전기코드를 끼는 시간부터 따져 한시간후면 저녁 설겆이까지 말끔히 끝난다.
파출부라도 두면 한결 편하겠지만 이 역시 시간에 구애받아야하기 때문에 모든 살림을 스스로한다.
가톨릭과 불교에 심취해 있다는 그는 어느 특정한 종교를 믿는 교인이 아니다. 가톨릭이나 불교나 모두 가치있는 종교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을 뿐이다.
하루의 일과가 끝나고 혼자만의 공간에 돌아왔을때 그는 전축에 「바하」의 무반주 첼로조곡을 걸고 참선하는 자세로 앉아 눈을 감는다. 스스로 이름붙인 「음악참선」을 하고 나면 한없는 위안을 얻게 된다고. 미술품감상·음악감상·여행등이 취미.
음악은 어려서부터 듣다보니 이젠 「바하」에 심취하게 되더라고 한다.
60년대에는 동인지 활동도 활발히 했고 친구들과 어울려 술잔도 많이 나누었지만 혼자 살기 시작한후 일과는 오히려 규칙적이 되고 생활은 더욱 폐쇄적으로 변해갔다.
우리나라는 아직 사회적으로 독신자의 독자성을 인정하려 않는다.
결혼을 당연한 의무로 생각해서 혼자 사는 사람을 인정하거나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이유를 묻거나 걱정하는등 오히려 괴롭히는 예가 많다. 때문에 독신자는 다른 나라에 비해 더 외롭고 고독할 수 밖에 없다고 그는 말한다.
『어느 때는 귀찮아서 이혼했다거나 상처했다고 대답합니다. 혼자 사는 것을 세상에 밝히며 살진 않았지요. 그러는 것이 편해요. 그동안 잡지사에서 독신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여러번 받았지만 한번도 쓰지 않았읍니다.
내가 그냥 혼자 사는 것이지, 이를 남에게 권장할만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쁘다는 생각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혼자 사는 것이 세상에 밝혀지면 난 또 한동안 귀찮아지지요.』

<자유분방이 아니라 부패>
박씨는 혼자 사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 『친구나 누가 와서 내 사는 걸 보면 도저히 이렇게는 못산다고 대부분 말합니다. 독신이라면 자유분방한 생활·자유연애·프리섹스등을 염두에 두고 얼마나 좋으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하지만 엄밀하게 따져 그런 생활을 누린다면 평생을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이 못되지요. 그건 부패를 뜻합니다.」
예술적인 창작활동이나 그밖에 평생의 정열을 쏟아 넣을 사업 또는 일거리가 없는 사람이라면 독신을 고집하지 말라는 충고도 잊지 않는다.
혼자 산다는건 어떤 의미에서 구도자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도 했다.
내가 누어 시들 때는 아사로 끝나리라.
단 한사람의 지켜보는 이도 없이,
단 한마디의 유언도 없이,
하지만 이내
하늘에선 고운 함박눈이 내리리라….
(시『내가 누어 시들 때는』)
혼자 산다는 느낌을 타인에게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78년 즈음부터 그의 시에는 독신에 대한 글귀가 눈에 뜨이기 시작했다.
『나이탓인 것 같아요. 그리고 혼자산다는 것과 사회, 그런 일들에 어지간히 익숙해져서 스스로 이를 잘승화 시킬수 있는 경지에 왔다고나할까요.』
나이가 들수록 혼자 산다는 것이 더욱 쓸쓸한 느낌을 주지만 죽는날까지 혼자의 시간을 갖고, 좋은작품을 쓸 수 있다면 축복받은 인생으로 생각하겠다는 것이 시인 박희진씨의 지금까지 생각이다. <김징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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