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의 활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라디오는 꿈의 매체이고, 환상의 매체이고, 상상의 매체인데 반하여 TV는 현실적이며 실제적인 매체다.
라디오는 물리적으로는 청각적 매체이지만 심리적으로는 시청각적인 매체다. 왜냐하면 청각이 시각적 감각을 움직임에 상상적인 시각활동을 가능케 해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라디오청취자들은 듣기만 하고 보지 못하기 때문에 평소의 시각적 경험을 토대로 청각적 요소를 시각적으로 수용하려는 의욕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 TV의 소리(Sound)는 라디오와 같은 환상적인 시각화의 경우와는 다른 것이다. 왜냐하면 TV의 영상은 지나치게 현실적이어서 상상의 영역 또한 극히 협소한 것이다.
그래서 라디오는 이미지가 중요하고 TV는 프로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KBS-TV와 MBC-TV의 이미지가 혼동이 되는 것은 좋은 예다. TV의 이미지는 근본적으로 프로그램 자체에 있기 때문에 언제라도 인기 프로만 삽입하면 시청자를 확보할 수가 있다. 내부를 잘 단장하고 재미있는 영화만 상영하면 관객을 끌 수 있는 극장의 경우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여성적인 라디오는 이미지가 중요하므로 프로를 자주 변경하고 출연자를 자주 교체하면 상상적·환상적 영역에 괴리감을 가져다준다. 10여년 된 라디오프로가 계속 인기를 끄는 이유는 그러한 때문이다. 라디오는 TV의 도전에 교란 당해서는 안 된다. 일반적으로 라디오방송은 TV프로와 TV시청자를 지나치게 의식하여 헛된 낭비를 일삼는다.
TV시청자는 포괄적으로 확산되었지만, 라디오 청취자는 한계성이 있고 대상이 어느 정도 뚜렷하기 때문에 TV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편성지침을 갖고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아침, 낮, 밤의 여건이라든가 시대의 조류, 경제적 환경, 문화적 성향, 에너지자원, 도시화 현상 등은 중요한 편성요인이 되는 것이다.
TV는 시각과 청각이 완전히 일치되어있기 때문에 양자의 관전한 결합이 없을 때는 극히 이질적으로 표현되어 조화에 커다란 불균형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그리고 TV에서는 청각과 시각의 기능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임무를 서로 뒤바꿔할 수 없다.
그러나 라디오는 심리적이고 환상적이기 때문에 음성이 청각 혹은 시각적으로 표현될 수 도 있는 이중의 표현기능을 갖고 있으므로 표현의 폭이 무궁무진한 것이다.
그렇지만 TV는 감정적이고 충동적이고 센세이셔널한 매체이기 때문에 계속 라디오의 적수가 될 것이다. 그래서 라디오는 장기적인 사전계획을 세워 부단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경주하지 않으면 안 된다.
TV의 이와 같은 남성적이고 저돌적인 성향에 맞서기 위해서 라디오는 TV처럼 프로를 계속 변경하고 충격요법을 사용하는 등의 방법은 곤란하다.
라디오의 방송방법은 TV에 비하면 너무나도 간단하다. 그러나 라디오 속에는 무궁무진한 신비의 자원이 숨어있어서 잘만 개발하면 TV와 공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라디오는TV로부터 억센 도전을 받아가며 독자적으로 운영될 때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나라 방송국들도 자체 안에서라도 라디오와 TV의 편성·제작기능을 완전 분리시켜 서로 경쟁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그러한 분리정책은 라디오와 TV를 동시에 돋보이게 하는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윤용(고대교수·신문학)
▲1940년 서울출생 ▲외국어대 영문과 졸 ▲미시라큐즈대 졸·신문방송학 전공 ▲저서 『화술론』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