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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9)제76화 화맥인맥(68)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학장운동 소문>
1959년인가, 서울 신문사가 주관해서 이승만 대통령 송수전을 연 일이 있다.
하루는 철농(이기우)에게서 내게 전화가 걸려왔다.
급한 일이 생겼으니 중앙청 식당으로 나오라는 얘기였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전화로는 할 이야기가 아니라면서 나와보면 알 것이라고 만날 시간만 알려주었다.
정한 시간에 중앙청 식당엘 갔더니 이 자리에는 철농 말고 소전(손재형)과 제당(배렴)도 나와 있었다.
그때는 소전이 국회의원 시절이라 자주 만나지 못하던 터였는데 꽤 오랜만이어서 반갑게 담소를 나누었다.
주관하는 서울신문사 책임자가 나오지 않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기다렸다. 그때서야 철농은 이 대통령 송수전을 연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서울신문사가 주관은 하지만 많은 서화가들의 적극적인 협력이 있어야겠기에 동양화와 서예의 대표격인 여러분을 모셨다고 취지 설명을 했다.
철농의 엄친 이세정씨(전 진명여고교장)는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에 관계하고 있고 이승만대통령과도 가까이 지낼 뿐 아니라 철농 자신도 이 대통령의 직인·사인 등을 전각해 그분의 총애를 받았다.
그런데 이 모임이 뜻밖의 오해를 불러일으켜 내 일생의 중요한 전기가 되어 지금도 잊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날 우연찮게도 나와 소금이 정답게 이야기하는 장면을 내 후배 한 사람이 목격했다.
그 무렵 서울대 미술대학에서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학장 운동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어 장발 학장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모양이다.
소문의 진원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내가 국회 문교분과위원장인 소전에게 이력서를 주어 학장이 되도록 부탁했다는 내용이었다.
나와 소전은 평상시 너무 친했기 때문에 누군가가 이런 헛소문을 만들어낸 것 같았다.
그렇다면 무엇을 노리고 이런 소문을 퍼뜨렸는지가 문제였다.
나중에 안일이지만 서울대 미술대학의 전임자리를 노리던 사람이 소전을 통해 장발 학장에게 부탁을 했던 모양이다.
장 학장이 TO가 없어 안되겠다고 거절했더니 그가 자리를 만들기 위해 나를 밀어내려고 장발씨와 나 사이를 이간한 것 같았다.
그 사람은 학장운동 소문이 장발씨에게 들어갈 것을 겨냥하고 당시 미술대 교수이며 장학장의 제자인 P씨에게 찾아가 『소전 선생이 호주머니에서 하얀 봉투를 꺼내 보이면서, 이게 월전이 미술대학장 시켜달라고 내게 맡긴 이력서야』하더라고 말을 흘렸다.
P씨도 설마 했지만 나와 소전이 워낙 친해서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그게 사실인가를 확인하기 위해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주시하던 차에 정보를 준 사람에게서 『월전과 소전이 중앙청 식당에서 만나 비밀 이야기를 나누더라』는 두 번째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우리가 중앙청 식당에서 이대통령 송수전이야기를 나눈 그 이튿날 P씨는 내게 『어제 중앙청 식당에서 소전을 만났다면서요』하고 물었다.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건 어떻게 아세요』하고 반문했더니 P씨는 『아니, 뭐…』하면서 말끝을 흐렸다.
이상하다 싶었지만 무슨 죄지을 일을 한 것도 아니어서 그냥 넘겨버렸다.
그런데 이게 화근이었다. P씨는 정보를 제공한 사람의 말이 꼭 맞는 것으로 알고 장 학장에게 『월전이 요즘 소전과 자주 만나는 것 같습니다』하고 넌지시 말을 꺼냈다.
장 학장은 『무슨 일로…』하면서 가볍게 받아 넘겼다.(주저하다가) 『저 말씀드리기가 좀 거북하지만 월전이 학장운동을 하는 것 같습니다』하고 정보 제공자가 한말을 그대로 전했다.
일이 여기까지 와 있는 줄도 모르고 장 학장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전과 사뭇 달라 무슨 고까운 일이라도 있었는가 생각해 봤지만 내겐 별 일이 없었다.
예년 같으면 교무과장·학생과장은 신입생 구술시험에 당연히 들어갔었는데 그 해는 유독 나만 「개밥의 도토리」처럼 따돌려 이상히 여기고 무슨 일이 있는가 알아봤다. P씨마저 입장이 난처했던지 이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아 자초지종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공교롭게도 정보제공자가 나를 만나자고 청해 다방에 갔더니 『장 학장이 월전 선생을 대놓고 욕하더라』면서 그럴 수가 있느냐고 흥분했다. 그는 『월전은 이제 틀렸으니 자네를 밀어주겠다』는 말까지 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장 학장과 따지기 위해 그 길로 다시 학교에 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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