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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껄끄러워하던 ‘애기봉 등탑’ 43년 만에 철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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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해마다 성탄절이면 북한 땅까지 밝히던 애기봉(愛妓峰) 등탑(사진)의 불빛이 43년 만에 사라졌다. 군 당국은 경기도 김포시 애기봉 전망대의 등탑을 지난 17일 완전히 철거했다고 22일 밝혔다. 군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국방부 경기남부시설단에 의뢰해 등탑 안전진단을 실시했는데 붕괴가 우려되는 D등급이 나와 철거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군 당국과 김포시는 전망대에 있는 나머지 시설도 올해 말까지 모두 철거한 뒤 평화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애기봉 등탑은 오랫동안 남북 심리전의 상징과도 같았다.

 1960년대에는 이곳에 주둔하는 해병대가 ‘대북방송 성탄예배’를 드렸다. 한 예비역 해병대원은 “16개 고성능 스피커를 통해 성탄절 축하메시지를 낭독하고 민간 성가대가 캐럴송을 불렀다”고 전했다. 이곳에 설치된 크리스마스트리는 북한에서도 볼 수 있도록 높이가 15m나 됐다. 그 때문에 ‘매머드 크리스마스트리’라고 불렸다. 그러다 71년 높이 18m인 애기봉 등탑이 세워지면서 크리스마스트리는 사라졌다. 애기봉은 북한에서 불과 2㎞ 정도 떨어져 있다. 많은 탈북자가 “애기봉에서 불을 밝히면 개성에서도 볼 수 있었다”고 증언했다. 북한은 매년 애기봉 점등행사가 ‘심리전’이라며 조준사격해 격파하겠다는 위협을 가하기도 했다.

 2004년 노무현 정부는 제2차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군사분계선 지역의 선전활동을 중지하기로 합의하자 애기봉 점등을 중단시켰다. 그러다 2010년 천안함 폭침사태와 연평도 포격 도발이 발생하자 이명박 정부가 종교단체의 점등행사를 허용했다.

 일각에선 이번 철거가 지난 4일의 북한 실세 3인 방남과 연관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하고 있다. 국방부 측은 “지난해 안전진단 후 철거가 예정돼 있었으며 대북전단 포격 등 북한의 움직임과는 전혀 관련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애기봉 등탑을 대체할 시설에 대해선 “평화공원의 설계가 아직 완료되지 않아 뭐라고 확답할 수 없다. 등탑 같은 구조물을 세운다는 계획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

군의 한 관계자는 “남북 갈등 요인 중 하나였던 애기봉 등탑이 사라진 마당에 굳이 대체물을 세울 필요가 있겠느냐”며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다.

유성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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