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학벌보다는 능력이 대접받는 사회가 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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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우리 사회에서 학벌은 프리미엄이다. 취업은 물론이고 임금 책정과 승진 등에 이르기까지 심대한 영향을 주고 있는 학벌이란 벽 앞에서 많은 청춘이 좌절한다. 치열한 입시 경쟁도 결국은 학벌 프리미엄을 따기 위한 무한경쟁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4년제 대학 졸업자 5명 중 한 명의 임금이 고졸 취업자보다 낮고, 소위 수도권 명문대학에 입학하고도 취업이 잘 되는 지방대학으로 향하는 학생들도 있다고 한다. 이를 두고 학벌사회가 깨지고 있다는 섣부른 분석도 나온다.

 이러한 현상은 학벌 붕괴까지는 몰라도 학력 거품이 꺼지고 있는 신호라고 보는 게 맞다. 실력보다 대학 간판이 앞서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관행이 극심한 취업난 앞에서 맥없이 꺾인 셈이다. 한 해 1000만원이 넘는 등록금을 대학에 갖다 내고도 졸업 후 취업이 안 되는 게 현 상황이다. 그런데도 무조건 대학 간판을 좇는 건 비합리적인 선택이다. 기업의 인사담당자들도 지원자들의 대학 간판보다 업무에 써먹을 수 있는 역량을 본다고 하니 학력 거품이 꺼지는 건 이제 시간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한때 세계 1위를 자랑하던 우리나라 고졸자의 대학 진학률이 최근 들어 뚝 떨어진 것도 이를 방증한다.

 결국 학력 인플레의 해소는 선진국처럼 굳이 대학에 진학하지 않더라도 산업 현장에 밀착된 전문 직업교육을 받으면 성공할 수 있는 길을 넓히는 데 있다. 기업이 이공계 인재를 원한다고 취업이 안 되는 인문계 정원을 줄이고, 이공계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으나 이는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 학력보다 기술과 기능이 중시될 수 있도록 정부와 산업계가 손을 잡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는 부당한 학벌 프리미엄이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틈새를 찾아 이를 개선하는 게 필요하다. 기업 역시 고졸자와 대졸자, 관리직과 생산직 간 부당한 임금 또는 승진 차별을 방치하지 말아야 한다. 한 번 얻은 대학 간판이 평생을 좌우하는 사회는 건강할 수 없다. 능력 중심의 사회로 이행하는 게 학벌의 폐해를 줄이는 첩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