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me] 1985~2005 20년 애증의 길…이승철&그룹 '부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 이승철(부활 전 보컬)
부활은 내게 자궁 같은 존재
20년 버텨온 비결요?
내 음악 고집 안 한 거죠

▶ 김태원(부활 리더)
아이 생각하면
영감이 샘솟아
나이 들면서 음악도
하얗게 밝아져

그룹 '부활'은 딱 그 이름처럼 살아왔다. 확 불꽃을 피웠다가 이내 사그라지고,다시 불같이 일어나면서. 1985년 '희야'로 데뷔한 지 20년. 리더 기타리스트 김태원(40)은 꿋꿋이 부활을 이끌고 있다. 부활의 보컬로 데뷔한 이승철(39) 역시 가수 인생 20년을 채웠다. 음악전문지 '핫뮤직' 조성진편집장은 "김태원의 작곡실력은 아시아에서 손꼽히고, 이승철은 록에 솔의 느낌과 연륜이 더해져 더욱 깊어진 훌륭한 보컬"이라며 "둘 다 음악적으로 최고의 위치에 올라 있다"고 평했다. 2집 이후 각자의 길을 걷던 두 사람은 2002년 '네버엔딩스토리'로 만났지만 다시 헤어졌다. 그리고 각각 20주년 앨범을 냈다. 이승철과 김태원을 따로 인터뷰해 함께 싣는다.

- 음악 인생의 굴곡이 심했다.

김태원=88년 이승철씨와 결별하고 나락으로 떨어졌다. 보컬의 영향력에 리더로서 큰 충격을 받았다. 똑같이 고생한 팀인데 너무 가혹했다. 대중의 시선이 한 곳에 몰리면서 나머지 멤버가 겪는 갈등은 어마어마하다. 보컬이 중요해도 그룹의 전체는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지금껏 음악을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94년 '사랑할수록'으로 100만 장을 팔면서 이승철 없이도 부활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이승철=내가 낸 솔로 앨범은 늘 '재기 앨범'이었다. 주변에서 그룹을 떠난 보컬이 잘되는 경우는 없다고 했지만 솔로로 성공했다. 그러다 대마초 파동으로 확 꺾이고, 결혼하고 나서 앨범 내고, 이혼으로 꺾인 뒤 다시 재기 앨범을 내는 식이었다. 부활은 내겐 어머니의 자궁 같은 곳이다. 우리나라 대표 밴드가 돼야 한다는 사명감과 의무를 갖고 2002년 부활 앨범을 만들었다. 그때 나는 부활의 멤버이자 제작자로서 많은 부분을 양보했다. 그런데 결국 함께 가지 못하게 됐다. 다행히 솔로 곡 '긴 하루'가 성공했다. 그렇게 20년을 살아왔다.

- 20년을 버텨 온 비결은.

김=첫 앨범을 함께 한 이승철씨, 이승철씨 탈퇴 후 팀을 불같이 일으키고는 교통사고로 숨진 김재기씨. 김재희.이성욱.김기연씨 등 꿋꿋이 부활을 지켜준 분들의 노력으로 20년이 왔다. 곡을 쓸 때는 나를 궁지로 몰아넣어 총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평소엔 딸과 놀기에 더 바쁘다. 음악이 아닌 가정이 1순위라야 오히려 더 많은 영감이 떠오른다. 1년 내내 음악에 몰두하면 제명에 못 살 거다.

이=노래를 비슷하게 잘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일단 운이 좋았다. 그리고 음악적으로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자기 음악에 대한 사랑을 버릴 줄 알아야 한다. 자식 사랑에도 절제가 필요하듯 말이다. 대중을 상대하는 가수에게 '자기 음악'이란 건 없다. 하고 싶은 음악을 안 하는 게 비결이다.

- 감회에 젖을 만도 하다.

김=긴 여행을 한 것 같다. 처음엔 아주 어두운 음악을 했는데 나이 들고 인생이 바뀌면서 점점 밝아진다. 하얗다 못해 빛나는 음악을 하려면 오래 살아야 할 텐데, 나이가 실감 안 난다.

이=훌쩍 공간을 넘어선 듯 아련하다. 지금까지 20년은 연습이었다. 이제야 노래가 뭔지 알겠다. 조용필씨 이후 중간다리 역할을 할 가수가 별로 없었는데, 그 길을 잇고 싶다. 그러려면 인간적인 성숙을 이루는 게 과제다.

- 늘 새 피를 수혈하는데.

김=부활은 보컬의 등용문이고 싶다. 이상적인 목소리라 생각하는 고 김재기씨와 닮은 얇은 음색을 찾아 헤맸다. 그러나 이번에 발굴한 새 보컬은 목소리가 좀 두껍다. 변화할 때가 됐다. 김재기씨도 이젠 한을 풀었을 것 같아서다.

이=목소리는 잘 변하지 않지만 감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대중의 트렌드에 맞추고, 젊은 음악가도 키우는 방법이다.

- 어떤 꿈을 꾸나.

김=덥지 않고, 느린데도 시원하게 들리는 슬픈 음악. 지독히 아름다운 슬픈 음악을 만드는 게 죽을 때까지 연구할 과제다. 부활은 30주년까지, 음악은 죽을 때까지 할 작정이다. 내 음악을 듣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작곡할 수 있다. 제작.사업엔 관심없다. 오로지 음악만 하는 것, 멋지지 않나.

이=사업을 포함해 음악과 관련된 모든 일이 적성에 맞다. 돈을 많이 벌어서 소양 갖춘 대중 음악가를 배출하는 고급 음악 학교를 세우고 싶다. 대중 음악 전용 콘서트홀도 짓고 싶다. 꿈으로 끝날지도 모르지만…. 60억원 들여 최고의 스튜디오를 만든 게 지금까지 제일 잘한 일 같다. 그리고 아이를 낳고 싶다. 그러려니 결혼을 해야 해 너무 복잡해진다. 음악적으로는 프랭크 시내트라처럼 늙어서도 노래하고 싶다. 그 나이에 후배들과 듀엣곡을 부르며 생을 마감하는 게 꿈이다. 그게 가장 아름답고 이상적인 모습 아닐까.

이경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