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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5)<화맥인맥-제76화>(64)배염의 죽음|월전 장우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제당(배염)은 1911년 경북 금능군 조마면 신안동에서 배선벽씨의 4남 5녀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금능에 있는 청년회관 중등과에 입학, 2년 과정을 마치고 17세 되던 1928년에 서울에 올라왔다.
외조부 댁에 유하면서 18세되던 29년부터 청전(이상범) 화숙에 다녔다.
청전 문하에 들어간 1년 뒤인 30년 10회 협전을 출발로 해마다 선전과 협전에 출품했다.
나와는 내가 이당화숙에 드나들 때부터 알고 지내는 터였다.
제당은 36년 15회 선전에 『요원』으로 초특선하고 43년 22회 선전에 『산전』으로 두 번째 특선을 따내 화명을 날렸다.
제당은 청전의 영향을 받아서 그 때만해도 청전풍의 그림을 그렸다.
41년부터 43년까지 청전화숙 동문전을 통해 그룹활동도 했다.
해방 이듬해부터 소전(손재형)·원곡(김기승)·고암(이응노)·철농(이기우)·청강(김영기) 등과 조선서화동연회를 조직했다.
같은 해 제당은 나와 현초(이유태)·고암·정강·심원(조중현)·석하(정진철)·운당(조용승) 등과 단구미술원을 만들어 3월에 창립전을 열었다.
제당은 생김새부터 얌전하고 아담했다. 말소리도 나직나직하다.
겉보다는 굉장히 사교적이어서 누구에게나 친절했다. 면이 넓어 친구가 많다. 함께 거리를 나서서 걸어가면 몇 사람씩 길에서 만나기가 일쑤다. 어쩌다 그냥 지나쳐도 쫓아가 아는 체하면서 한참씩 이야기를 나누는 다정다감한 사람이다.
제당의 이런 버릇 때문에 나는 하릴없이 길에 서서 기다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는 안국동 해위(윤보선)댁 뒤에 살았는데 취미가 고상해서 그림도 걸고 수석도 좋아했다. 수석에 파란 이끼를 올려놓고 친구들이 오면 자랑스레 보여주곤 했다.
차는 누가 오든 연다를 대접, 다도를 일깨웠다.
제당은 무슨 일이든 고집부리지 않는 타협의 명수였다.
안국동 제당 집에 잘 드나들던 사람은 사진작가인 백오(이해선)와 고암이었다. 그와 친하지 않은 사람이 없지만 특히 고암·소전·인당 세 사람은 이놈저놈하고 터놓고 지냈다.
호암은 제당 집에만 오면 으례 술내오라고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제당은 술이라고는 입에도 못 대는 사람이지만 고암의 뜻을 잘 받아줬다.
한번은 술 못하는 샌님(제당)에게 억지로 술을 먹였다가 혼줄이 났다.
반도호텔 뒤에 있는 일식집으로 기억되는데 아마 그날 당문당 사장 우강(박봉환)과 청당(김명제)·제당(배렴)과 내가 자리를 함께 했던 것 같다.
여름이어서 맥주를 마셨다. 우리 셋은 술을 잘 하는데 제당만은 말죽은 뒤 체장수 처럼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옆에 아가씨들이 앉아있었건만 손목도 한번 안 잡고 농담도 않고 글 읽는 선비처럼 가만히 있었다.
내가 제당에게 『이봐, 가만히 앉아있으면 어떻게 해』하고 먼저 거들었다.
『파트너 사정도 좀 봐줘야지. 맥주 잔을 받아놓고 그냥 있으면 어떻게 해』하고 약을 올렸다.
『밥을 먹으려면 집에서 먹지 뭣 하러 요릿집에 오느냐』면서 맥주 잔을 들어 먹였더니 권에 못 이겨 단번에 한 컵을 들이켰다.
제당에게 술을 먹여놓고 우리들끼리 떠들고 놀았다.
한참 후 제당은 얼굴이 창백해져 그 자리에 드러누웠다.
왜 그래 하고 얼굴을 보았더니 이마에 땀방울이 솟아있었다.
그래 허리띠를 풀고 안정을 시켰다.
그는 이렇게 맥주 한잔에 녹아웃 될 정도로 술에 약한 사람이다.
제당은 심장이 약한 사람이었다. 국전심사 중에 점심을 하러 나와 함께 중앙청식당에 내려왔다. 점심을 들고 천천히 가는데도 숨이 차서 색색소리를 낼 정도였다.
그가 비명에 간 것도 바로 심장이 약한 탓이었다.
68년인가, 예술원에서 국전심사위원을 천거하는데 그가 회원들의 구두초청을 받아 명단을 작성하다가 미스를 냈다.
원로회원 한 분이 누구를 쓰라고 불렀는데 안 쓰고 망설였다.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자기가 생각하는 사람을 써넣었다.
이걸 보고 원로회원이 삿대질을 하며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고 다그치는 바람에 쇼크를 먹었다.
당당히 맞서서 자기생각을 피력했으면 응어리가 풀어지건만 워낙 심약해서 싫은 소리를 그대로 다 듣고는 화를 참지 못해 속으로 울화가 터진 것 같다.
예술원 회의를 마치고 광화문 귀거래 다방에서 소전·시암(배길기)과 함께 코피 한잔씩 마시고 헤어졌는데 그날 저녁도 잘 먹고 안방서 사랑채로 나갔다가 심장마비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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