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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생명 위협하는 가짜 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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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적재산권(IPR) 보호가 한국에 투자하고 있는 외국기업이 겪고 있는 주요 이슈 중 하나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일반시민들은 위조품 확산을 그리 걱정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기업들이 약간의 손실에 호들갑 떤다고 생각하고 계속 이러한 물품을 구입해 위조품 시장을 부추기고 있는 현실이다. 하지만 금전적 손해만이 문제가 아니다. 조직 범죄와 위조품 시장 간의 직접적 연계가 있으며, 거기다 그 파장이 엄청난 공공보건 문제도 있다.

지적재산권과 공공보건이 무슨 상관인지 어리둥절한 독자도 있을 것이다. 위조품 시장이야 옷이나 액세서리.소프트웨어.음반.도서 및 비디오에 한정된 것이라고 생각할 테니 말이다. 그만큼 약국에서 팔고 있는 약품의 일부가 위조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놀랄 것이다.

필자가 가장 우려하는 점은 한국에서 가짜 약들이 점점 더 활개를 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중에서도 심장약처럼 환자의 목숨과 직접 관련이 있는 약들까지 가짜가 돌고 있다. 이러한 가짜 약이 널리 퍼지게 되면 그 공급책을 잡기도 전에 이로 인한 사망자가 발생할 수 있다. 특정 브랜드 약품이나 일반 약품 모두 위조될 수 있는데 승인받은 정식 제품인 양 보이게 출처 명을 교묘하고 헛갈리게 붙여 놓는다. 이 중에는 활성성분이 없거나, 성분 함유량이 부족하거나, 엉뚱한 활성성분으로 위험한 약품, 가짜 포장 제품 등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10% 이상이 가짜 약이고 다수의 개발도상국에서는 가짜 약이 50%에 달하고 있다고 한다. 동네 약국이 모르고 이런 가짜 약을 구입할 수도 있고, 아니면 고의로 구입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소비자들로부터 부당이익을 얻고 있을 수도 있다.

한국의 제약시장 규모는 90억 달러 이상으로 추정되며 세계 10위에 이른다. 1990년 중반 이후 다수의 미국 및 유럽 제약회사들이 4개의 합작회사를 한국에 세웠고, 전체 시장의 60% 가까이 차지하고 있다. 국내 회사들이 수적으로는 더 많지만 대부분 특허기간이 만료된 제품의 카피인 일반 약품을 생산하고 있다. 교역량도 상당해 지난해 의약품 수입이 15억 달러, 수출이 5억 달러 이상을 기록했다. 가짜 약 제공자들이 군침을 흘릴 만하다.

가짜 약이 국내에서 생산되는지, 아니면 모조 약 생산과 판매의 허브로 유명한 중국에서 밀수되는 것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최근 몇 달 동안 다국적 기업들의 민원으로 서울지역 경찰들이 약 150개 약국을 불시 단속한 바 있다. 그 결과 1억5000만원 이상어치의 발기부전 치료제인 시알리스와 비아그라를 압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부다. 세관에서도 중국으로부터 온 화물 가운데 가짜 약을 적발한 바 있지만 훨씬 많은 양이 공급되고 있을 것이다. 지난해 발생한 불량 만두 소동만큼이나 충격적이고 국민건강을 위협하는 요인인데도 아직 일반시민들은 가짜 약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겉으로 봐서는 진짜와 가짜 약을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에 효과가 없거나 별다른 부작용이 발생하는 약품이 거의 보고되지 않은 실정이어서 얼마만큼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정부도 알기 어렵다.

경찰은 제약회사들에 모조 약 공급책을 잡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제약회사들은 처벌 강화도 요구한다. 현재 의약품법과 상표권 위반에 관한 형사처벌은 최고 7년의 징역과 1억원의 벌금형이다. 행정처벌로는 추가 적발이나 적발 규모에 따라 약국 면허를 6~15개월간 정지하거나 취소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처벌로는 위조 약 공급책들에게 별 효과가 없으며, 인터넷과 신문 등을 통해 가짜 약 광고를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기 전에 정부 당국에서 이러한 공급책들을 단속하고 무고한 시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가짜 약을 모두 수거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장자크 그로하 주한EU상의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