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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읽기] 빛의 속도가 바뀐다? 물리학 뿌리 흔드는 대담무쌍한 상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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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런던 임페리얼 칼리지 이론물리학자인 주앙 마게이주의 '빛보다 더 빠른 것'(김성원 옮김, 까치)은 이론물리학과 우주론이 탄생하는 과정을 소상히 들여다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마련해준다. 그런데 이 책이 단지 그런 의도만으로 써진 것은 아니다. 마게이주는 오늘날 표준가설로 받아들여지는 빅뱅과 인플레이션 이론 없이 우주 탄생과정을 설명하려고 시도하다가 대담하게도 "초기 우주에서 빛이 지금보다 더 빠른 속도로 움직였을 것"이라는 가변광속이론(VSL)을 제안한 인물이다.

광속불변의 법칙은 1905년에 발표된 특수상대성이론의 토대에 해당하며, 상대성이론은 양자역학과 함께 현대 물리학을 떠받치는 두 기둥이다. 따라서 빛의 속도가 일정하지 않고 가변적이라는 그의 주장은 아인슈타인에게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일 뿐아니라 물리학의 뿌리에 의문을 던지는 '이단'으로까지 몰릴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그동안 물리학의 금과옥조로 여겨져온 광속불변의 법칙에 도전을 제기한다는 점만으로도 주목을 끌만하다.

그렇지만 이 책의 더 큰 장점은 흔히 일반인들의 눈에 가려져 있는 연구자들의 공간을 솔직하고도 생생하게 그려준다는 점이다. 저자는 자신이 새로운 주장을 제기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느라 과학자들의 착상, 사유, 토론, 그리고 시기와 경쟁의 과정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다시 말해서 "과학자들이 사랑과 미움의 관계로 어떻게 함께 일하는지, 어처구니없는 아이디어가 어떻게 점차 모양을 갖추고 논문의 형태로 나오게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인슈타인과 우주론 다시 읽기'에 해당하는 1부는 아인슈타인이 농부와 소에 대한 특이한 꿈을 시초로 시간의 상대성이라는 아이디어를 이론으로 수립하는 과정을 새로운 시각에서 이해하게 해준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2부에서는 가변광속 이론의 아이디어를 담은 논문이 권위있는 과학전문지 네이처에서 퇴짜를 맞고 결국 '피지컬 리뷰 D(PRD)'지에 게재되기까지 벌인 출판 전쟁이 담담하게 서술된다. 더구나 이 과정에 연루된 많은 과학자와 연구기관들이 모두 실명으로 거론된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마게이주의 이론에 대한 검증은 아직 진행형이다. 따라서 그의 제안은 명멸했던 무수한 아이디어 중 하나로 잊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설령 그렇더라도 그가 이 책에서 남겨준 소중한 것은 과학이, 최종결과물인 특정 이론만이 아니라 숱한 시도와 좌절까지를 포괄하는 전체로서의 과학함이라는 인식이다.

김동광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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