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벌이 5백70원…코바늘뜨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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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열흘 전부터 코바늘뜨기를 시작했다. 직업이 없는 나지만 가정주부가 주업인 나의 살림 밖 일이니 부업이라 불러도 좋으리라.
그것은, 기계로 몸통만 짠 수출용 겨울 스웨터의 목둘레와 앞섶, 그리고 소매를 코바늘로 몇 바퀴씩 돌려가며 뜨는 일이다. 보기보다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다. 삯은 한장에 1백90원.
한장 뜨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약2시간이다. 아직은 손에 익지를 않아 잘해야 하루3장을 완성시킨다. 6시간 노동에 5백70원의 품삯. 분명 이것은 너무도 비생산적인 일이며 어이없을 만큼 박한 보수라고 누구나 말할 것이다. 작년 초까지만 해도 나는 하루 8시간, 그리 힘들지 않은 노동으로 월급과 보너스 합쳐 한달 평균 15만 원을 받는 직장을 가졌었다. 아기 출산 때문에 부득이 그만둔 일자리였다. 거기에 비한다면 하물며 더 말할 나위가 없을 지경이다.
그러나 지금의 나에게 그 5백70원의 의미와 가치는 결코 하찮은 것이 아니다.
처음엔 앞에서 말했듯이 노력에 비해 너무 야박한 품삯을 주는 게 영 비위에 거슬렸고 일거리를 쥐고 앉은 내 모습이 초라하고 궁상맞게만 여겨져 당장 달려가『나 이런 것 못하겠어요』하고 도로 가져다 주고싶었다. 그러나 이왕 가져온 열 장. 이것만 떠서 가져다주자 하고, 아기가 잠자는 사이사이에 하여 며칠 후 열 장을 다 마무리지어 보따리에 싸 가져 갔다. 갈 때 마음으론 주는 삯만 받고 일감은 가져오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곳에 도착해 보니 나처럼 보따리를 들고 온 낯선 아주머니들이 너댓 명이나 먼저 와 있었다. 알고 보니 나 이외에도 스무 명 정도가 이 일을 하고 있고, 일감이 달릴 때면 서로 한 장이라도 더 가지고 가려고 극성스레 드나들며 주인집 아이에게 과자를 사주는 등 선심공세까지 편다는 것이었다.
『세상에! 이 야박한, 터무니없이 싼 삯을 받으면서 경쟁까지 하다니요….』나는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어 그들을 마치 나무라듯 한마디했다.
그랬더니 한 아주머니가 『뭐라카능교. 집에 가만히 앉아 있으믄 한 달 다문 만오천 원이라도 그저 생기능교. 티끌모아 태산이라꼬 나는 이래도 석달치 모아 그저께 온천에도 갔다 왔구마는.』눈을 흘기듯 하며 톡 쏘았다. 그러자 아주머니들 각자가 제각기 한 마디씩 했다.
『비싸 엄두도 못 내던 5천 원짜리 장난감을 꼬마에게 사주니 얼매나 좋아하던지….』
『나는 옆집에서 빌린 만원을 갚았더니 속이 시원하대요….』
『나는 이 달 말에 찾으믄 집에서 입을 치마하나 살 거라예….』제각기 이「야박스런 삯」의 용도를 놓고 즐거운 얘기꽃을 피우는 것이 아닌가. 그들에게 있어 그 돈은 내가 생각하듯「비생산적이고 터무니없이 싸서 비위 상하는 그런 돈이 결코 아니었다. 티끌 모아 태산 된다는 교훈을 주고, 소박하고 고운 소망을 이룰 수 있는, 적지만 결코 보잘 것 없지 않은 소중하고 흐믓한 돈이었다.
그 날 나는 그 아주머니들과 똑같이 일감 열 장씩을 보따리에 싸서 그 집을 나왔다. 내게 있어서도 이미 그것은 소중한 것이 되어 있었고, 그것을 들고 집으로 오는 나는1백90원의 진정한 가치를 아는 여자로 변해 있었다. (부산시 남구 망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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