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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챙긴다고 뭐 이런 것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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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고정애
런던특파원

얼마 전 런던의 웨스트엔드 오데온 극장에선 조영욱 영화음악감독의 작품 공연이 있었습니다. 유수의 교향악단인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단원 8명이 연주했는데 청각적으론 나무랄 데 없는 즐거움을 선사했습니다. 시각적으론 그러나 뭔가 ‘허전’했습니다. 넓은 무대인데도 연주자가 8명뿐이어서였을 겁니다. 또 그랜드 피아노가 있어야 할 자리를 전자 키보드가 대신해서였을 수도 있습니다.

 행사를 주최한 주영한국문화원 사람들은 “안전 문제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극장 측이 “영화 상영을 위한 시설이라 무대가 견고하지 않을 수 있으니 한 번에 8명 이상 올라갈 수 없다”고 통보했다고 합니다. 8인의 앙상블이 구성된 이유입니다. 장정 서너 명의 체중을 합한 무게의 그랜드 피아노는 꿈도 꿀 수 없었을 테고요. 당시 “뭐 이런 것 신경 쓰나…” 싶었습니다.

 하기야 2011년 K팝 스타인 샤이니의 공연 때 극장 책임자가 신신당부했다는 말도 같은 취지였습니다. “샤이니에게 ‘절대로 관객들에게 앞으로 오라는 듯 손짓을 해선 안 된다’고 주지시켜라. 극장이라 콘서트장과 달리 입출구가 많지 않아 자칫 관객들이 앞으로 몰렸다가 사고가 나면 대처가 안 된다.”

 한국에서의 잇따른 안전사고 소식에 당시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누군가 “선진국 수준의 안전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다짐하고 있겠지요. 시설 안전 규제는 물론이고 사람들의 행동 양태까지 감안한 대책이 나올지 궁금합니다.

 이른바 ‘선진국’에서 지내다 보면 ‘안전’은 평소엔 ‘불편’으로 느껴집니다. 런던의 지하철만 타 봐도 알 수 있습니다. 1800년대 후반부터 지어진 시설이라 스크린도어를 설치할 수 없는 곳이 태반입니다. 지하철이 승강장으로 들어올 때 승객들이 많다 싶으면 직원들이 나타나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 호루라기를 불어대질 않나 방송으로 계속 “마인드 더 갭(mind the gap·열차와 승강장 사이 간격을 조심하라)”을 외칩니다. 승객이 너무 몰린다 싶으면 지하철로 향하는 입구의 셔터를 내립니다. 공사를 이유로 아예 무정차 통과하는 역이 있는가 하면 주말엔 반드시 어느 구간인가 운행을 중단합니다. 철도의 경우 비라도 오면 “차라리 내가 걷는 게 빠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느림보 운행을 합니다. 지하보도는 어떻고요. 사람들의 동선이 뒤엉키지 않도록 일방통행을 하게 설계돼 있어 자칫 길을 잘못 접어들면 엉뚱한 곳에서 헤맵니다.

 비용도 듭니다. 직원 한 명이라도 더 고용해야 한다는 얘기인데 결국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입니다. 기차삯으로든 세금으로든요.

 이런 시스템의 장점을 체감할 순 없습니다. 사고가 안 났으니까요. 결국 안전은 사회 전체가 당장 혜택을 느낄 순 없더라도 불편과 비용을 감내하거나 받아들이는 의식이란 생각도 듭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고정애 런던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