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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는 달러 해외로 '물꼬' 터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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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부가 14일 내놓은 '해외투자 활성화 방안'은 외자도 유치하면서 우리도 해외에 투자할 수 있는 범위를 적극적으로 넓혀 가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그동안 외환정책은 '유입 촉진, 유출 억제'에 치중했으나 앞으로는 유입과 유출을 모두 촉진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겠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국내 시장에 달러가 넘치면서 원화 가치가 올라(원-달러 환율 하락) 수출이 둔화하는 등 부작용이 생겨나자 해외투자의 문을 더욱 넓히기로 했다.

여기에는 비교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 달러를 해외로 들고 나가 호텔, 부동산 등에 투자해 서비스업의 해외진출 거점을 만들겠다는 포석도 깔려 있다. 강남 부동산에만 매달리지 말고 해외 부동산에도 눈을 돌리도록 물꼬를 터주자는 취지다. 이렇게 되면 해외 여행객이 우리나라 사람이 외국에서 운영하는 호텔.식당 등을 찾을 수 있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나아가 국내 서비스산업의 선진화에도 보탬이 된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해외투자의 문을 넓히면 해외로 돈이 몰려나가 국내 외환시장이 불안해지는 등 부작용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 배경과 기대효과=최근 수년간 우리나라는 수출 호조로 큰 폭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한 데다 외국인의 투자도 지속되면서 시중에 달러가 많아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외환위기 이후 현재까지 연평균 250억 달러 수준의 외환이 국내시장에 공급됐다. 올해도 약 200억 달러가 국내에 들어올 것으로 예상된다. 외환보유액은 올 5월 말 현재 2061억 달러에 달한다.이에 따라 2002년 이후 달러화에 대한 원화 가치는 30.3%나 절상(환율하락)돼 같은 기간 일본(21.3% 절상), 대만(11.6% 절상) 등에 비해 절상 폭이 컸다.

내수 회복이 아직 본격화하지 않은 현 단계에서 이 같은 환율하락은 수출기업의 채산성 악화를 초래했다. 장기적으로는 수출이 둔화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그동안 위축된 개인과 기업의 해외투자를 촉진해 시중의 달러를 해외로 나가도록 하는 일이 시급해졌다. 개인이나 기업이 해외의 부동산을 손쉽게 구입하게 되면 부동자금이 해외로 나갈 수 있어 국내 부동산시장을 다소 안정시킬 수도 있다.

기업이나 개인이 해외투자를 통해 현지공장을 세우면 국내외 생산을 통합해 거래비용을 줄이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게 된다. 해외에 진출한 완제품 생산업체가 국내에서 중간재와 자본재를 조달해 국내 투자 확대에 기여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진동수 재정경제부 국제업무정책관은 "동북아 금융허브가 되기 위해서도 활발한 해외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문제는 없나=해외투자의 문이 활짝 열리면 앞다퉈 시중 돈을 해외로 빼낼 가능성이 있다는 게 가장 큰 걱정이다.

우리나라의 해외 직접투자 규모는 크지 않지만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2001년 26억7000만 달러에 그치던 해외 직접투자 규모가 지난해에는 57억8000만 달러로 뛰었다.

특히 개인과 개인사업자의 해외투자도 빠르게 늘고 있다. 올 들어 4월까지 개인과 개인사업자의 해외투자는 지난해보다 21% 늘었다. 그 때문에 이번 대책이 국내자금의 대거 이탈을 불러와 국내시장을 불안에 빠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대해 재경부 관계자는 "해외투자 활성화로 예상되는 추가 자본유출액이 연간 10억~15억 달러에 그칠 것이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올해 우리나라로 들어올 외국인 투자 규모만 160억 달러가 예상돼 우려할 수준이 아니라는 얘기다.

해외 부동산을 구입하기 위한 신고가 제대로 이뤄질지도 미지수다. 지금도 한국은행에 신고하고 해외 부동산을 구입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 편법으로 해외 부동산을 취득해 왔는데 이번 조치로 편법 투자가 양성화할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

재경부 관계자는 "불법 외화유출에 대해서는 외국환 거래 정지와 2년 이하의 징역 등 강력히 처벌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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