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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생 무료검사 해주고 공단에 2168회 진료비 청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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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경남 지역의 I한의원은 지난해 3~8월 인근 어린이집·유치원과 ‘영·유아 건강검진 협약’을 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돌며 키·몸무게·체온 등 체질검사를 무료로 해줬다. 그 과정에서 부모들로부터 개인정보 이용 동의서를 받았다. 이 한의원은 이때 얻은 개인정보를 이용해 아이들이 매달 두 차례, 모두 2168회 진료를 받은 것처럼 꾸몄다. 건강보험공단에 2400만원의 진료비를 신청해 불법으로 받아냈다. 이 한의원의 불법행위는 한 부모가 신고하면서 드러났다. 연말정산용 의료비 내역서를 발급받았는데 허위 진료 사실을 발견해 한의원 측에 따지고 건보공단에 신고했다. 뒤늦게 병원이 다른 지역으로 이전했지만 불법행위를 숨길 수는 없었다.

 경기도의 한 I한의원은 2012년 초 군 부대를 찾아가 병사들을 대상으로 무료 의료 봉사활동을 했다. 그해 7월부터 1년 동안 병사들이 한의원을 찾아 238회 진료를 받은 것처럼 서류를 조작해 건보공단에서 300여만원의 진료비를 받아 가로챘다.

 의료기관들의 건보재정 빼먹기 수법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두 한의원처럼 의료봉사까지 악용하거나, 건강검진 수검자와 요양원 환자까지 동원한다. 일반 건보가입자도 가세해 건보재정을 축낸다.

 건보공단이 최근 26가지 유형의 건보재정 축내기 행태를 공개했다. 건보공단은 올 1~6월 3016억원의 재정 누수 사례를 적발했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2135억원)보다 크게 증가한 것이다.

 건강검진이 일반화하면서 의료기관들이 검진 대상자의 인적 정보를 악용하는 경우가 등장했다. 서울의 N의원은 건강검진 고객을 모아주는 전문업체를 통해 단체 검진 영업을 공격적으로 진행했다. 종합검진은 건보가 적용되지 않는데, 비보험으로 검진을 해놓고 2012년부터 9개월간 검진을 받은 6521명에게 ‘원인 불명의 장증후군’이란 병명을 붙여 진료한 것처럼 꾸몄다. 이를 통해 3억3000만원의 건보재정을 축냈다. 대구의 M의원은 건강검진 결과를 보러 찾아온 방문자 891명에게 ‘기타 전신 증상 및 징후’라는 병명을 붙여 2012년 한 해 1100만원의 건보재정을 빼먹었다.

 요양원 환자를 동원하기도 한다. 대전의 L의원 원장은 의원 위층에 요양원을 차려놓고 약 4년 반 동안 요양원 환자들이 의원에 와서 2189회 진료 받은 것처럼 꾸며 1600만원을 착복했다. 인천의 T요양병원은 의사·영양사 인력을 뻥튀기 신고하고 입원료와 식대 가산료 2억3600만원을 불법으로 챙겼다. 인력이 많으면 건보재정에서 인센티브를 받는 제도를 악용한 것이다.

 건보공단 김종대 이사장은 “건보공단이 진료비를 의료기관에 지급한 뒤 잘못된 비용을 확인해 환수하고 있는데, 이는 순서가 뒤바뀌었다”며 “일부 의료인이 이를 악용하는 경우가 매년 증가한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의료기관들이 진료비를 청구하는 시점에 부적정 진료 여부 등의 부정행위를 확인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성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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