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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학자·기자 동행 취재 부산발 교육 혁명] 中. 학생을 먼저 생각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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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뇌종양 판정을 받고 부산 백병원에서 치료 중인 윤모(12)군은 3년째 학교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수시로 장기 입원 치료를 해야 하기 때문에 초등학교 정규과정을 따라가기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올 3월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백병원 내에 '병원학교'가 생겼기 때문이다. 병원학교는 부산시교육청이 윤군처럼 장기 입원으로 학교에 갈 수 없는 초.중.고 학생들을 위해 병원 측의 동의를 얻어 마련한 병원 내 특수학교다. 학생 수준에 맞춰 철저한 개인교습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되며, 학교에 출석한 것으로 인정돼 퇴원 후엔 정규 학년으로 복귀할 수 있다.

윤군은 병원 인근 혜남학교(특수학교)에서 파견된 김진주(25.여) 교사에게서 '학교 공부'를 하고 있다. 병원학교를 통해 윤군이 얻은 것은 '학습'만이 아니라 심리적인 안정과 희망이다. 김 교사는 "처음 만났을 때 아무 꿈도 없던 아이가 얼마 전 자신의 꿈을 요리사로 정했다며 자랑했다"고 말했다.

부산 시내에는 백병원 외에도 이런 병원이 여럿 있다. 부산대부속병원은 이미 지난해 3월부터 병원학교를 운영 중이고, 동아대의료원도 올 3월 병원학교를 열었다.

부산시교육청 박희원 장학사는 "학교가 수요자를 찾아가는 교육 서비스를 통해 교육의 기회를 보장한다는 취지에서 병원학교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발 교육혁명의 요체는 이처럼 학생을 최우선으로 배려하는 교육 서비스 정신이다.

'학생이 찾아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찾아 나서고' '학생을 먼저 생각하고' '학생 입장에서 고민하는'교육을 기획하고 실천한다는 게 부산시교육청의 슬로건이다.

◆ 학교가 학원 역할도 한다=부산 금사중에는 매일 오후 5시30분이면 인근 윤선중.남일중.동신중 3학년 학생들이 찾아온다. 인근 여러 학교에서 선발된 우수 교사들에게서 수준별 보충학습을 받기 위해서다. 매일 3시간씩 '학교 내 학원'수업이 진행된다. 이는 배우고 싶지만 사교육비 부담으로 어려움을 겪는 저소득층 가정의 학생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학습지원단' 프로그램이다.

설동근 부산시교육감은 "더 공부하고 싶은 학생들에게 학습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올해는 10개 거점학교에서 600여 명의 학생이 혜택을 받고 있지만 앞으로 대상 학생을 확대해 나간다는 게 교육청 방침이다.

◆ 교육청이 논술학당도 운영=부산시교육청은 지난 4일 '토요학당'을 열었다. 고교생들이 논술.심층면접에 대비할 수 있도록 시교육청이 직접 운영하는 무료 사업이다.

토요일 오후 4시간씩 8주간 수업을 진행하며 1기마다 90명을 모집해 가르친다. 시교육청 이종수 중등교육과장은 "특히 저소득층 자녀가 사교육비 부담 없이 배울 수 있도록 수강료는 물론이고 교재비까지 교육청 예산으로 지원한다"고 말했다.

◆ 부진아 교육 위해 대학생 교사제 도입=부산시교육청은 4월부터 초.중.고교에서 '대학생 교사제'를 실시하고 있다. 이는 학습 부진 학생을 위한 특별보충과정 운영에 사범대 재학생들이 수업자료 준비, 수업 지원, 숙제 관리.평가 등을 담당하는 보조교사로 활동하는 제도다.

시교육청이 부산대.신라대를 설득해 참여 학생들에게 현장실습 또는 봉사활동 학점(2학점)을 부여케 함으로써 이뤄졌다. 부산교대도 2학기부터 참여한다. 서울시교육청을 비롯한 다른 지역에서도 이 제도의 벤치마킹에 나선 상태다.

◆ 대학 공부 미리 하는 학점 연계제도 실시=지난해 9월 부산시교육청과 부산.울산 지역 12개 대학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고교-대학 연계 학점 인정 프로그램'협약식을 위해서다. 이는 대학 진학을 앞둔 부산 지역 고3 학생들이 12개 참여 대학에서 개설한 어느 강좌를 수강하더라도 그중 한 대학에 입학할 경우 학점을 인정받는 전국 최초의 프로그램이다.

이에 따라 12개 대학에서 고3을 위한 51개 강좌가 개설됐고 부산 지역 1513명, 울산 지역 227명 등 1740명의 학생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 프로그램은 교육부가 '수월성 교육 종합대책'으로 대학과목 선이수제(AP:Advanced Program)를 도입하는 계기가 됐다.

김남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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