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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 회장 선임, 정부 입김 줄어드니 노조 입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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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KB금융지주 차기 수장 후보 선출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KB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는 22일 후보 네 명을 심층 면접한 뒤 이사회에 추천할 최종 후보를 표결로 정할 예정이다. 최종 후보는 9명의 사외이사 중 6명 이상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1차 투표에서 몰표가 나올 가능성이 작은 만큼 2차 투표까지 갈 것으로 보인다.

현재 후보는 김기홍 전 국민은행 수석부행장, 윤종규 전 KB금융 부사장, 지동현 전 KB국민카드 부사장, 하영구 씨티은행장 네 명이다. 하 행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수년간 KB금융에 몸담았던 경력이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내부 출신’으로 분류되는 이들은 최고경영자(CEO)를 역임한 경험이 없다. 순수 외부 출신으론 하 행장이 유일하다. 이를 두고 사외이사진으로 구성된 회추위에 이른바 정치권 등의 ‘외부 입김’이 크게 작용하지 않은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KB금융 사태의 원인이 거듭된 ‘낙하산’ 경영진간의 알력에서 비롯됐다는 비판에 당국과 사외이사진 모두 극도로 조심한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지 않자 이번엔 노동조합이 회장 선임과정에 개입하고 나서 논란을 빚고 있다. KB국민은행 노조는 1차 후보군 선발 전부터 조준희 전 기업은행장, 이종휘 전 우리은행장 등 후보로 거론되던 외부인사에 서신을 보내 후보직에 응모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외부 출신이 선임되면 출근 저지 등 ‘물리력’을 동원하겠다고 압박했다. 그러면서 노조 핵심 관계자가 ‘(KB에) 4년 이상 근무하면 내부 인사’라는 구체적인 잣대까지 제시하기도 했다. 노조가 특정 인물을 밀고 있다는 소문이 나온 건 이 때문이다. 이어 2차 후보 네 명이 가려진 직후인 17일에는 유일한 외부 후보인 하 행장을 공격했다. 노조는 이날 “새롭게 도약하자는 분위기가 무르익는데 의혹투성이인 외부인사가 최종 후보자로 거론되면 직원들은 허탈함과 상실감을 감출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KB금융의 한 관계자는 “조직안정이 급선무인 상황에서 노조의 노골적 압력은 사외이사로서도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금융계에선 이 같은 노조의 행위가 월권이란 지적이 나온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아시아금융학회장)는 “낙하산의 폐해는 전문성이 떨어지고, 외부 입김에 쉽게 흔들리는 인사 때문에 불거진 문제이지 내부냐 외부냐 같은 출신에서 비롯된 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노조가 입장을 밝힐 수는 있지만 특정 후보를 밀거나 배척하며 회장 선임에 개입하는 건 노조의 권한 밖”이라고 지적했다.

처음부터 노조 입김에 휘둘리는 사람이 회장으로 선임돼선 KB금융그룹의 개혁을 밀어붙이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손상호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금은 KB라는 거대 조직이 와해되어 갈 길을 잃은 상황”이라며 “한때 부동의 업계 선두였던 그룹의 위상을 되찾자면 뚜렷한 비전을 제시하고 조직을 융합해 끌고 나갈 수 있는 리더십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치적으로 중립성을 지킬 수 있어야 하고 일체의 외부 압력에도 버틸 수 있는 뚝심과 소신이 있는 인물이 절실하다”고 했다.

 대부분 전문가들은 본선에 오른 네 명의 후보 중 전문성 면에서 결격사유를 가진 이는 눈에 띄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특별히 갖추고 있어야 할 능력과 관련해서는 강조점이 조금씩 달랐다. 윤석헌 숭실대 교수는 “국민·주택은행이 소매금융에서 강점이 있었던 만큼 이 부분을 특화해 이끌어나갈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며 “나아가 대표 은행인 KB의 약점인 글로벌 역량을 보완하는데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오 특임교수는 “KB의 동경지점 부당대출, 주택채권 횡령 문제 등을 보면 리스크관리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며 “은행의 내부 통제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하고 관리 경험이 있는 후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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