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판교 참사 … 소 잃고 외양간도 안 고친 대한민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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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세월호 사고부터 고양터미널 화재, 신당역 지하철 추돌사고를 거쳐 판교 환풍구 붕괴사고까지. 최근 반년 사이 잇따른 믿기지 않는 대형 참사들이다. 사고가 일어나면 ‘안전불감증’을 탓하고, 안전시스템을 늘리고 안전의식을 높이자고 목청을 높였지만 정부 정책부터 시민의식까지 달라진 건 하나도 없었다. 안전불감증, 안전 무대책은 세월호 이전이나 이후나 여전히 똑같다. 정부는 판교 사고 직후 재빨리 정홍원 총리가 현장으로 달려갔고 안전대책회의를 했다며 홍보에 열을 올렸다. 안전의식이 높아져서라기보다 사고를 당한 뒤에 국민들에게 욕먹지 않는 처신에 대한 학습효과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중요한 건 재난 후의 처신이 아니라 사고를 막기 위한 안전관리대책에 얼마나 노력했느냐다. 그러나 진전은 없었다.

 이번 판교 공연만 해도 그렇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공연장에 안전요원이 없었다. 규정상 3000명 이상 모이는 대규모 공연부터 안전요원 규정을 두고 있으므로 규정위반은 아니다. 깊이가 18m나 되는 깊은 환풍구에 어떤 위험표시도 없었다. 도심 한가운데 그런 깊은 구멍을 파면서 중간에 걸리는 그물망이나 지지대도 없었다는 건 더 기가 막힌다. 환풍구 추락사고로 해마다 목숨을 잃거나 중상을 당하는 사고가 잇따랐는데도 아무도 경각심을 갖지 못했다. 규정은 허술하고, 위험지대에 대한 관리는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안전관리는 말로만 되는 게 아니다. 비용을 투입해야 하고, 시민들에게 안전 교육을 시켜야 한다. 서울시 도시안전 및 학교안전예산은 2년 동안 15%가 줄었고, 최근 안전문제가 크게 부각된 원자력 안전 예산도 3년 새 15%가 주는 등 안전 예산은 거꾸로 가고 있다. 시민 안전교육 비용은 아예 없다시피 하다. 안전관리 비용은 일어나지 않은 위험에 대한 투자라는 점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처럼 여기에 투자하지 않으면 인재(人災)형 재난을 피해갈 수 없다. 그만큼 소를 잃었으면 이젠 외양간도 좀 고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