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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생명윤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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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옛날 옛적에 사과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때는 가을이라 알이 굵고 태깔이 고운 사과가 주렁주렁 열렸다. 마침 사과나무 아래를 지나던 강아지가 굵직한 똥 한 덩어리를 남겼다. 낯선 곳에 떨어진 똥은 막 이웃이 된 사과에게 예의바르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사과양?"

사과양은 도도했다. '네까짓 똥이 감히 나에게' 싶었던 모양이다. 사과양은 대꾸는커녕 휑하니 고개를 돌리느라 그만 땅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배변 뒤 배가 고픈 참이던 강아지가 날름 사과를 받아 먹었다. 똥이 한마디 했다. "조금 있다 봐요, 사과양!"

똥과 사과 이야기는 자연의 순환에 관한 깨우침 하나를 준다. 사람 또한 똥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는 아니다. 상종 못할 상놈을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라고 욕하는 걸 보면 그 친밀성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때로 인간을 똥자루라고 부르는지도 모른다.

과학자는 이 똥자루를 학문적으로 쉽게 설명할 때 단백질 덩어리라고 부른다. 남과 여의 단백질이 한데 엉겨 생명체가 되는 것이 탄생이요, 이 단백질이 흩어지는 것이 죽음이다. 여기까지가 과학이다. 인간이 그 정도라면 '인생은 허무한 거야' 한탄하는 이에게 필요한 것이 종교다. 이를테면 단백질이 흩어질 때 어찌하여 그렇게 가슴이 찢어지느냐고 묻는다면 신학자는 대답해야 한다. 우리가 왜 똥과 달리 슬픈지를.

한국 천주교와 불교가 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의 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반대하고 나섰다. 종교계는 연구에 쓰이는 복제된 배아가 분명 인간 생명체이기에 이를 실험에 쓰거나 조작.파괴하는 일은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행위라고 말한다. 과학자는 단백질 덩어리를 분석해 불치병을 극복하려고 한다. 신학자는 그 단백질 덩어리의 존재 이유를 묻는다. 인류는 똥과 사과 사이를 윤회한다.

이쯤 불쑥 떠오르는 의문이 있다. 아우슈비츠에서 수백만의 유대인이 죽어 갈 때 천주교는 생명윤리 논쟁을 제기했던가. 신학자 못지않게 줄기세포 연구를 반대하는 부시 미국 대통령은 그가 일으킨 전쟁에서 죽어가는 성인 남녀 수가 얼마인지 생각해 봤을까. 생명체가 될 가능성만 있는 줄기세포의 존엄도 중요하지만 이미 목숨을 받은 인간의 존엄성은 더 소중하고 시급하다.

정재숙 문화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