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선진국 기술독점 자체개발로 극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대통령이 주재하는 「제l회 기술진흥확대회의」에서 3가지의 우수기술개발 성공사례가 발표되는 등 기술개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정부가 무역진흥확대회의와 비견되는 기술진흥확대회의를 분기별로 개최키로 한 것은 수출드라이브에 이어 기술드라이브정책을 강력히 추진하기 위한 것. 무역진흥확대회의가 수출진흥의 촉진제 역할을 한 것처럼 기술진흥확대회의도 과학기술의 급진적 도약을 위한 기폭제가 될 것 같다. 오래전부터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2의 경제도약은 고도의 기술확보 없이는 불가피하다고 지적돼 왔다. 그 이유는 저임금을 기반으로 하는 노동집약적 제품은 이미 국제 경쟁력을 잃었으며 조만간 대만·브라질·중공 등이 경쟁대상국으로 등장, 지금의 우리 수출시장을 위협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기술의 독점주의는 날이 갈수록 팽배해 고도기술 도입이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런 때 발표된 기술개발성공사례는 「우리도 하면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값진 교훈이 아닐 수 없다. 꾸준한 의지와 노력, 산학협동으로 성공한 기술의 내용과 과정을 지상중계한다.
컬러TV 색신호IC
색신호IC는 TV방송국에서 보내는 영상신호를 적·녹·청으로 분해해 브라운관에 천연색으로 재현하는 기능을 맡는 것으로 이 IC가 없으면 흑백TV와 동일하다.
삼성전자는 80년 2월부터 자체 기술자 84명, 해외 기술자 1l명 등 95명의 연구인력을 동원, 3억5천만원의 개발비와 개발설비비 7억원을 들여 21개월만인 8l년 11월 제품화에 성공, 올부터 양산체제에 들어갔다. 삼성전자가 색신호IC 개발에 총력을 기울인 것은 컬러TV의 수출과 국내 컬러TV방영으로 색신호IC의 수요가 급증했으나 수입원인 일본(78년 개발)이 보급과 기술제공을 기피했기 때문이다.
색신호 IC가 제대로 공급이 안돼 한때 컬러TV가 품귀현상을 빚기도 했다.
색신호 IC는 집적회로(IC) 3개와 트랜지스터 3개를 하나로 묶은 대규모집적회로(LSI)로 5전개의 소자가 들어 있어 상당한 회로설계기술과 정밀도가 요구된다.
연구팀은 기술정보입수·기술연수·최신설계 및 검사장비를 도입, 컴퓨터설계를 통해 고집적회로 구성의 한 방법인 2중배선의 입체설계에 성공, 개가를 올린 것이다. 색신호IC의 개발은 우리도 LSI의 시대가 개막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그것은 설계기술·집적기술·가공기술 등이 LSI를 개발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한 예로 회로의 선을 가늘게 하는 이 새 가공기술은 선진국이 1천분의 3mm 수준이었고 우리가 1천분의 8mm였는데, 이번 개발에서 1천분의 4mm 수준까지 정도를 높이는데 성공했다.
색신호IC의 개발로 금년부터 국내수요를 자급, 86년 4천만달러의 수입대체효과를 얻을 수 있게 되었으며 수출시장의 다변화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삼성전자는 86년까지 4백50명의 기술인력을 투입, 현재 선진국이 개발경쟁중인 VLSI (초대규모집적회로)에 도전키로 했다.
델터통신장비
금성전기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공동으로 개발한 새로운 델터통신장비는 기존의 통신장비를 혁신한 것으로 이미 실용화에 들어가 있다.
델터변조란 연속신호인 영상이나 음성신호를 1과 0으로 표현되는 2진신호(디지틀신호)로 바꿈으로써 많은 통화와 좋은 음질을 갖게 한다.
이번에 개발된 장비는 30명의 동시통화가 가능하고 전력사용량이 적으며 중계기능까지 할수 있어 앞으로 사용범위가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금성전기는 컴퓨터시대에는 데이터통신이 가능한 디지틀 통신이 필수적임을 깨닫고 77년말부터 KAIST와 공동개발에 들어갔다.
과기원의 축적된 첨단기술과 기업의 연구비 및 기술자가 합세하자 연구는 급진전, 78년 12월에 핵심기술인 델터변조회로와 회선다량화 회로의 개발이 끝나는 놀라운 개가를 올렸다.
79년 5월에는 최종 시제품이 완성되어 규격화와 미비점 보완에 들어갔다. 기술진들은 이어 양산체제를 위한 작업을 시작, 80년초에 제품이 시장에 나오게 됐다.
외국도 기술제공을 꺼리는 델터변조방식이 단기간 안에 개발됨으로써 같은 가격의 구형장비보다 회선은 12에서 30으로, 소비전력은 40분의 l, 중량은 14분의 1로 대폭 개선됐다.
가격은 1대에 l만2천달러선으로 같은 성능의 외제보다 절반 이상이나 싸졌다. 적은 개발비로 단기간에 개발함으로써 대단한 원가절감효과를 얻은 것이다.
금성전기는 이미 중동·동남아·남미 등지에 수출상담을 벌이고 있어 경쟁력 높은 수출상품으로 각광을 받게 됐다.
KAlST는 지난해 델터변조방식 중 가장 우수한 방식인 하이브리드 델터변조방식을 개발,미국에서 특허를 얻은 바 있어 수출전망을 밝게 했다.
노르말 파라핀
산학협동의 대표적인 케이스로 공장건설까지 60억원이 투입된 야심적인 기술개발 성공사례다.
서독에서 노르말 파라핀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화학연구소에서 이 분야를 계속 연구중이던 이규완박사팀과 후에 설립된 이화주식회사팀이 맺어진 것은 79년 1윌.
20여년동안 함께 화학공장을 운영하며 아스팔트, 포르말린의 생산장치 국산화를 이룩한 공만택사장(50)과 기술이사 이형국씨(44)는 연성세제의 원료인 노르말 파라핀을 국산화하기로 결정, 비록 불황이었지만 과감한 투자를 했다.
노르말 파라핀은 연성세제·방수제· 플래스틱첨가제 등의 원료로 이용되는 석유화학계통의 제품으로 매년 2천만달러 어치씩 수입되고 있다.
연구팀은 80년 l윌 본격적인 공정설계에 들어갔고 3윌에는 노르말 파라핀을 생산하는 주식회사 이화를 설립했다. 81년 1월에는 울산석유화학단지에 생산공장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올 3월이면 첫 시제품이 나오며 연생산량은 l만8천톤. 가정용 연성세제는 전량 대체되며 일부 공업용 세제에도 돌려 사용될 수 있다.
이화공장의 특징은 국내 실정에 맞게 탈황이 안된 원유를 가지고도 노르말 파리핀을 추출할 수 있게 한 점이다. 앞으로 노르말 파라핀의 수요는 점점 늘어갈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은 분해가 어려운 경성세제보다는 80%가 분해되는 연성세제를 사용, 수질오염을 줄이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공사장은 『불황에 막대한 설비투자를 한다는데 많은 동료들이 우려했지만 지난 경험으로 보아 장치 국산화에 자신을 갖고 모험을 했다』며 『불황일수록 기술개발에 주력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터득했다』고 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