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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공격은 양날의 칼 … 터키, 지상군 투입 놓고 속앓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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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7호 14면

18일 시리아 북부 국경도시인 코바니가 화염에 휩싸였다. 이날 미국 주도의 국제동맹군은 IS(이슬람국가) 거점을 공습했다. 이곳에선 한 달째 IS(이슬람국가)와 쿠르드군이 밀고당기는 시가전을 벌이고 있다. 국제동맹군은 공습을 통해 쿠르드군을 지원하고 있다. 터키 정부는 국제동맹군의 요청에도 불구 지상군 투입을 미루고 있다. [로이터=뉴스1]

적의 적은 친구라지만 이번엔 다른 양상이다. 터키·시리아·쿠르드·이슬람국가(IS)가 서로 물고물리며 복잡한 세력 다툼을 벌이고 있다. 특히 터키는 시리아 내 IS의 세력 확장으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영토 일부를 점령하고 있는 IS가 터키와 불과 1㎞ 떨어진 시리아의 국경도시 코바니 함락을 위해 공세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 도시가 IS 수중에 넘어갈 경우 터키의 안전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중앙SUNDAY-터키 지한통신 공동 취재] 국제사회 IS 딜레마

미국 주도로 국제동맹군이 코바니를 공습하면서 IS의 공세를 저지하려 하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상태다. 이에 따라 미국은 터키 정부에 코바니에 지상군을 투입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문제는 코바니가 터키 내의 독립을 추구하는 쿠르드족 거주지라는 점이다. 터키가 IS를 직접 공격할 경우 자신의 적대세력을 도와주는 꼴이 된다. 터키가 지상군 투입에 주저하고 있는 이유다.

터키와 대립하고 있는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은 현재 IS와 치열한 내전을 벌이고 있다. 또 알아사드 정권과 밀접한 관계인 시리아 내 쿠르드 세력은 터키 내 쿠르드족 독립을 지원하고 있다. 터키가 IS를 공격하면 알아사드 정권과 쿠르드 독립세력을 간접 지원하는 셈이다. 터키는 물고 물리는 복잡한 국제 역학관계에서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IS, 시리아 북부 코바니 한 달째 공격
17일(현지시간) AP통신 등 외신들에 따르면 시리아 북부도시 코바니에서는 한 달째 IS와 쿠르드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 이를 피해 코바니를 탈출한 주민은 18만 명이 넘는다.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은 “최근의 공습으로 IS 대원 수백 명이 사망하는 등 성과가 있었지만 IS에 의해 코바니가 점령될 가능성은 여전히 크다”며 “공습만으로는 코바니를 지켜낼 수 없다”고 말했다. 터키의 지상군 투입을 압박하는 발언이다.

터키 의회는 이미 지난 2일 터키군의 해외 파병과 외국군의 터키 주둔을 허용하는 사전 동의안을 통과시켰다. 군 통수권자가 지상군 투입 결정을 하면 바로 코바니로 진격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터키 정부는 아직 지상군 투입에 따른 이해득실을 계산하고 있다.

아흐메트 다부토을루 터키 총리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터키 지상군의 시리아 파병은 알아사드 정권 퇴진을 전제조건으로 결정할 것”이라며 “알아사드가 물러나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을 경우 지상군 투입은 없다”고 못 박았다. 또 파병을 미루는 이유를 “알아사드가 계속 집권해 잔혹한 행위를 지속할 경우 시리아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못한다. 알아사드에 반대하는 또 다른 극단주의 세력의 등장으로 혼란이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터키의 적인 알아사드 정권을 붕괴시키는 데 국제사회가 동의해야만 파병을 하겠다는 것이다.

시리아 내전 이후 터키와 시리아의 관계는 악화돼 왔다. 터키가 알아사드의 퇴진을 요구하는 반군을 지원하면서 양측은 첨예한 대립각을 세웠다. 급기야 터키는 알아사드를 ‘자국민을 학살하는 독재자’라고 비난했고, 2012년 6월에는 터키 전투기가 시리아군에 의해 격추되면서 돌이킬 수 없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터키의 또 다른 고민은 자국에서 독립을 추진하고 있는 쿠르드족 반군인 쿠르드노동자당(PKK)의 세력 확장이다. 터키 정부는 지상군을 투입해 IS 세력을 약화시킬 경우 시리아 내 쿠르드족 정치세력인 민주동맹당(PYD)이 득세할 것으로 보고 있다. PYD는 이미 지난 1월 코바니·아프린·하사케 등 시리아 북부 쿠르드족 거주 3개 도시를 묶어 자치정부를 수립했다고 선포했다. 알아사드 정권을 지지한 대가로 시리아 내에서 자치권을 확보한 것이다.

터키 정부는 시리아의 PYD와 자국 내 PKK의 연대 강화를 크게 우려하고 있다. 시리아의 PYD가 터키 PKK의 세력 확장에 활용되거나, 터키 내 쿠르드족 독립 추진의 지렛대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뷸렌트 아른츠 터키 부총리는 “PYD의 자치정부 수립은 알아사드 정권의 지원으로 가능했다”며 “PYD가 자치정부를 세운 것은 큰 실수”라고 말했다.

터키 의회가 승인한 군사작전의 대상은 IS뿐만이 아니다. 알아사드 정권과 시리아 내 쿠르드군까지 포함시켰다. 해외 파병을 한다면 자국에 위협이 되는 두 세력도 패키지로 격퇴하겠다는 의도를 담은 것이다.

터키의 미온적 태도에 쿠르드 반발
터키 정부의 태도에 쿠르드족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 7일부터 터키 내 쿠르드족 주민들은 “정부가 코바니 사태를 방관해 무고한 쿠르드인들이 대거 희생당하고 있다”며 격렬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시위를 진압하던 경찰과의 충돌로 발생한 사망자는 수십 명에 달한다. PKK 지도자인 압둘라 외잘란은 성명을 통해 “IS가 코바니를 점령하면 터키 정부와 진행 중인 평화협상을 무산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와중에 쿠르드족 내 강온 세력 간 견해 차로 무력충돌이 발생했다.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최근 동부 가지아테프에서는 쿠르드족 간 총격전으로 4명이 사망하고 20명이 부상했다. 동부 빙골에서는 PKK와 쿠르드족 급진 이슬람 조직인 헤즈볼라 간 충돌사건을 조사하던 경찰관 3명이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 이 과정에서 빙골 경찰서 아탈라이 위르케르 서장도 총에 맞아 중상을 입었다.

터키의 쿠르드계 제도권 정당인 인민민주당(HDP)은 코바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쿠르드족의 연대와 시위 자제를 호소하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이번 쿠르드족들의 반정부 시위는 PKK와의 평화협상을 방해하려는 시도”라고 비난하며 자제를 촉구했다.

국제사회는 터키 정부의 지상군 파병을 압박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효과가 없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최근 다부토을루 터키 총리와 메브류트 차부쇼울루 외무장관 등과 잇따라 통화했지만 파병에 대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

터키 정부는 ‘시리아 북부에 비행금지 구역을 설정하고 안전지대를 만들어 난민들을 보호하자’는 제안을 내놓으며 지상군 투입을 미루고 있다. 하지만 안전지대를 위해서는 비행금지 구역 설정이 우선돼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의결이 필요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알아사드 정권을 지지하는 러시아가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미국 정부도 “안전지대 설정을 현재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이다.

이런 와중에 미 국무부는 코바니의 쿠르드족 정치세력인 PYD와 접촉했다고 밝혔다. 지상군 투입을 미루는 터키 정부를 더 이상 기다리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파병을 주저하는 터키 정부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AP통신은 “터키 정부가 계속 미적거릴 경우 직접 코바니의 쿠르드족을 지원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라며 “미국이 시리아 내 쿠르드족과 협력할 경우 코바니 사태는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꼬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알파고 시나시 터키 지한통신 한국특파원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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