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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문대 화가 정수영은 이인상의 화풍 본 받은 듯-이태호씨, 고고 미술연구 발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지금까지 막연히 18세기초까지 활약한 문인화가로만 알려져 왔던 이색화가 정수영의 가계와 생애가 밝혀져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 20일 국립중앙박물관 세미나 실에서 열린 고고미술연구소(소장 최순우)금년도 첫 발표회에서 이태호씨(국립 광주박물관 학예연구원)는 『조선후기의 이색화가 정수형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통해 지우재 정수영은 하간 정씨로서 세종대의 학자 정인지의 12대 손인 명문출신인데 1743년에 태어나서 1831년까지 89세의 장수를 누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정수영은 지금까지 그의 독특한 화풍으로 당시 화단의 이색적인 존재로 만 생각되었고 그의 사승관계는 분명치 않았다. 그는 명문출신 이었으나 문슨 연유에서인지 벼슬길을 버리고 평생 명승지를 유람하면서 많은 작품을 남겨 어느 기록에나 『시문과 서화에 능했다』고 만 적혀있다.
이로써 정수영은 단원 김홍도보다는 2년 연장인 동시대 인물이었으며 문인화가 이인상(1710∼1760년)보다는 33년 연하가 된다.
정수영화풍의 두드러진 특징은 실경을 그대로 그리지 않고 『마음속으로 느낀 실경의 감동』을 그렸다는 그의 말과 잘 부합한다. 따라서 정수영은 조선후기 화단의 겸재 정선·단원 김홍도로 이어지는 화원 풍에서 훨씬 벗어나, 당시 문인화가사이에서 존숭 받은 릉호관 이인상의 화풍을 본 받은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씨는, 이것은 바로 조선후기 화단의 산수화에서 화원풍과 사대부풍의 양대 산맥을 확인시켜 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하고, 또 조선후기의 진경산빙는 당시 지도제작과는 별개였음을 강조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화풍은 금강산을 회화사상 가장 중요한 모티브로 잡은 것을 공통점으로 들었다.
정수영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국립 중앙박물관 소장의 『한?강도권』과 동원(이홍은) 기증품의 『해산첩』-.
그중 『해산첩』은 단발령을 넘어 장안사 등 금강산 명승을 그린 화첩으로서 특히 유탄?각사(목탄스케치)를 해 놓고 2년후 이를 바탕으로 그렸다는 자신의 기록이 붙어 있어 서양화풍 도입과도 긴밀히 연관된다.
한편 이 발표에 뒤이은 토론에서 안휘준교수(홍익대) 는 『조선후기 문인화가의 맥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문제제기』라고 말하고, 그렇다면 정수영의 화풍이 어딘지 소치 허련과 유사한 정도 풀릴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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