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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건설플랜트' 장기파업의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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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지난 3월 18일 시작된 울산건설플랜트노조의 파업은 5월 27일 울산 노동계와 사용자단체, 시민단체, 그리고 울산시 등으로 구성된 공동협의회에서 몇 가지 사안에 합의하면서 71일 만에 타결되었다. 노조는 화장실.식당.휴게실 등 복리후생 및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집단교섭을 요구하였으나 노사 간 현격한 견해 차이로 파업이 장기화되었다. 파업 과정에서는 노조의 출근 및 작업방해, 서울 마포 SK건설 타워크레인 농성, 울산 정유탑 점거농성, 급기야는 쇠파이프와 각목이 난무하는 등 과거에나 볼 수 있었던 전근대적인 시위행태가 전개되기도 하였다.

타결된 내용은 소정 기준시간 단축, 사회보험료 노사 각각 절반씩 부담, 불법적 하도급 금지, 조합원을 이유로 한 채용시 불이익 자제, 조합비 원천징수 등이다. 공동협의회에서 합의하지 못한 교섭방식이나 합의내용의 효력 및 적용 등의 구체적 방안은 추후 논의하기로 하였다.

합의내용에 대해 노사 모두 불만족스러운 측면도 없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같은 날 국제포경회의와 전국노동자회의를 앞두고 합의에 도달한 점에 대해서는 노사 양측의 성숙된 자세가 보이기도 한다. 사실 5월 27일 전국노동자회의 개최 전까지 합의에 도달하지 않았을 경우 집회의 과격화, 국제회의 차질, 노조의 기대감 상실로 인한 극한행동도 예견되었을 뿐 아니라 6월 임시국회에서 비정규직 법안 통과(예정)와 이에 대한 노동계의 강력한 반발, 그리고 본격적인 임.단협 시기와 맞물렸을 경우 노사관계의 파국을 가져올지도 모르는 상황이기도 하였다.

이번 울산건설플랜트노조의 파업이 주는 교훈은 여러 가지다. 우선 노조의 목적이 아무리 정당해도 수단과 방법이 정당하지 못하면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는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가 노조의 불법 행위에 대해 울산 시민과 해당 기업체에 사과하고, 울산건설플랜트노조는 앞으로는 합법적인 조합활동을 하기로 합의한 데서도 나타난다. 파업과정에서 종종 일어나는 노동계의 불법 관행을 일정 부분 바꾸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노사관계에서는 조급증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교섭 방식을 둘러싸고 노사 간 견해의 차이가 현격했기 때문에 이번 파업이 발생했다. 하지만 불법 행위를 통해 조기에 해결하고자 한 것은 노사관계의 정상적인 발전이나 신뢰구축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이번 사태는 보여준다.

파업은 노조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책이 아니라 차선책이다. 이번 불법 파업으로 노사 모두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 노조는 근로조건 등에서 일정 부분 개선되는 효과를 거두었지만 작업물량이 많은 정기 보수기간에 71일 간의 파업으로 생계곤란, 집행부를 비롯한 조합원 40여 명 구속, 건설 근로자에 대한 시민들의 부정적 이미지 각인 등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 사업주들도 건설 근로자의 외지 이탈에 의한 인력 부족에 따른 일당의 대폭 상승, 정기 보수 연기 등 작업 차질이 생겼다. 또한 외국인투자가 감소세를 보이는 시점에서 이번 파업은 외국인 투자 유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파업은 화장실.식당.휴게실 등 기본적인 복리후생을 제공하지 않거나 개선하지 못한 발주처와 협력업체에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 이 문제는 침소봉대된 면이 없지 않으나 문제 발생 후 조치를 취하는 것보다는 사전예방에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는 점에서 다른 기업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이번 파업 해결에 공동협의회 역할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파업 때마다 시민단체나 자치단체 등이 문제해결을 주도해서는 안 된다. 노사관계의 발전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다. 어디까지나 노사 문제는 노사가 주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와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결론적으로 울산건설플랜트노조의 파업이 다소간의 불상사가 있었지만, 극한 상황에까지 이르지 않고 타결된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김정한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