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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의 애환 시로 읊어봤죠" 국·영문 시집 펴낸 대원외고 김영수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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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시험이 저를 속일지라도/슬퍼하거나 노하지 않겠습니다/모든 것은 순간이며/지난 것을 그리워한다는 말씀/늘 새기고 있겠습니다'('시험 망친날 푸시킨께')

'듣기 싫은 소리는 코로 듣고/맡기 싫은 냄새는 귀로 맡아요'('잔소리 이기는 법')

'꿈이 끝나면/저절로/잠이 깰 테니/제발 좀/깨우지 마세요'('늦잠')

수능을 대여섯달 앞둔 고3 수험생이 시집을 냈다. 누가 고3 아니랄까봐 그가 쓴 시들엔 또래만의 정서가 물씬하다. 최근 '고등학생 영수가 쓴 청소년시'를 펴낸 김영수(18.대원외고 불어과)군은 이런 자기 시를 '청소년시'라 이름 붙였다. "동시와도, 성인시와도 뭔가 다르다"는 당당한 입장 표명이다. 시집에 발문을 쓴 정호승 시인은 "고등학생이라는 고통스런 현실을 솔직하고 천진스러운 웃음으로 승화시켰다"고 평했다. 김군은 외고에서 갈고 닦은 영어 실력을 발휘해 자기 시들을 직접 영어로 번역, 원문 옆에 싣기도 했다.

김군은 경남 진주남중 3학년 때 첫 시집 '초등학생 영수가 쓴 동시'를 내놓았다. 어머니 최명란(42)씨는 "아이가 입을 열어 말하는 게 다 시라서 혼자 듣기 아까웠다. 그래서 어딘가 적어두길 권했다"고 했다. 김군은 초등학교 6년 내내 일기장을 일기 대신 시로 가득 채웠고, 내친 김에 동시집까지 냈다.

중학교에 입학한 뒤에도 그는 메모장을 끼고 다니며 공부하는 짬짬이 떠오르는 시상(詩想)을 써놓곤 했다. 매일 오전 6시50분에 등교해 오후 11시에 귀가하는 빡빡한 고3 생활 중에도 그의 시상 메모는 계속됐다. 그렇게 중.고교 6년간 끄적인 시들을 묶어 이번에 두번째 시집을 낸 것이다.

그런데 정작 김군의 장래 희망은 시인이 아니라 대통령이다. "나라를 경영하는 게 재밌을 것 같다"고 한다. 그래서 대학에서도 경영학을 전공하고 싶단다. "시는 대통령이 되든 안되든 평생 쓸 생각"이라고 했다.

시 외에도 그의 관심사는 다양하다. 교내 마술반 동아리의 강사, 교내 밴드 '별악'의 보컬, 기타.클라리넷.팬 플루트.오카리나 연주…. 시집 표지 안쪽에 적힌 김군의 이력을 들여다보다 "혹시 못하는 것도 있느냐?"고 묻자 그는 멋쩍게 웃기만 했다.

글=신예리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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