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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소재부품 산업은 국가경제 ABC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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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이우일
서울대학교 연구부총장

“불휘 깊은 남간, 바람에 아니 뮐세”용비어천가의 한 구절이다. 뿌리 깊은 나무는 가뭄도 타지 않는다. 근본이 깊고 단단하면 어떤 시련도 견뎌낼 수 있다. 나무가 국가를 의미한다면 열매는 성장이고, 뿌리는 곧 제조업이다.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와 이어진 유로존 재정 위기 이후 세계는 위기의 파도를 가볍게 넘긴 독일을 주목했다. 유럽 총 제조업 부가가치의 30%를 차지하고 있는 독일은 연이은 위기의 와중에도 오히려 역대 최고치인 수출 1조 유로를 달성했다. 2010~2013년 사이 프랑스가 0.8%, 이탈리아는 -0.4% 성장할 때에도 독일은 연평균 2.1% 성장률을 기록, 제조업이 경제의 뿌리임을 증명했다.

 국내에서도 인식의 대전환이 이루어졌다. 이제는 국내 경제 전문가들도 제조업이 바로서야 다른 산업 분야들도 성장할 수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를 위한 핵심 산업이 바로 소재부품 분야다. 소재부품 분야의 신기술은 다른 전후방 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매우 크다. 핵심 기술을 확보했을 때 독과점화 되는 특성도 있다. 듀폰의 연구원이었던 빌 고어에 의해 고안된 ‘고어텍스’는 30여 년 동안 아웃도어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한국은 1990년대 말까지 자동차·철강 등 자본재 산업을 육성해 ‘규모의 경제’ 확보에 주력해오다 2001년 이후부터 제조업의 뿌리인 소재부품 경쟁력 강화에 나서기 시작했다. 소재부품의 발전 없이는 만성적 대일 무역 역조는 물론이고 제조업 경쟁력 강화가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국내 소재부품 산업은 정부와 기업의 꾸준한 노력으로 1997년 처음으로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한 이후 승승장구하며 올해 상반기 506억달러를 달성해 반기 기준으로 사상 첫 500억달러를 돌파했다. 하반기에도 세계경제 회복에 따른 수출 증가세 확대와 내수 회복세 지속의 영향으로 상반기와 비슷한 성장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독일이나 일본의 소재부품 산업은 장기적인 경기불황에도 불구하고 국가 경제를 떠받치는 핵심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 독일과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도 소재·부품 산업을 중심으로 한 제조업 경쟁력 강화에 집중하는 추세다. 중국 역시 핵심 부품과 신소재의 국산화율을 향후 3∼5년 내에 50∼80%까지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최근 몇 년 사이에 소재·부품 강국인 독일, 미국과 일본을 능가하여 소재·부품 수출 세계 1위 국가로 부상하기도 했다.

 소재부품 분야는 원천 기술과 경쟁력을 갖춘 품질을 확보하기까지 진입장벽이 높아 많은 투자와 긴 시간이 필요하다. 한국도 소재부품 산업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가속화해야 한다. 단기적인 성과에 만족하지 말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지속적인 투자와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정부와 기업이 힘을 합쳐 장기 전략을 수립하고 소재부품 산업 역량을 개선한다면 올 연말까지 사상 최고 실적을 달성하고 머지않아 ‘세계 4대 소재부품 강국’에 반드시 진입하리라고 확신한다.

이우일 서울대학교 연구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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