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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의 휴먼북스] SF와 우리네 인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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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바쁜 일상 때문에 우리는 인류가(즉 우리들 각자가) 문명사적으로 변혁기에 있다는 것을 의식하며 살지는 않는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진지하게 물어야 하는 시점에 서 있다. 인류는 과학 기술의 발달과 함께 지난 2세기 동안 세상을 엄청나게 바꾸어 왔다. 그러나 막상 자신을 진지하게 반성하고 바꾸는 데는 무척 소홀했다. 그래서 아직 인류는 '인간중심주의'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인간은 바뀌어야 한다. 자신이 바꾸어 놓은 지구라는 삶의 터전에 대한 보은을 위해서도 그렇다. 디지털 혁명과 생명공학의 획기적 발달로 인한 '포스트 휴먼'(Post Human) 또는 '뉴 휴먼'(New Human)의 시대 도래를 예측하기에 앞서, 인간성(Humanity)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근원적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나 자신을 잘 알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 인류가 자신을 잘 알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로 타자가 필요하다. 그 타자는 적어도 인간만큼의 지적 능력을 갖춘 생명체여야 한다. 그런 생명체는, 지금까지 우리가 아는 한 지상에는 없다. 그러므로 인간의 근원적 자기 반성을 위해서는 '외계 지적 생명체'와의 만남이 필요하다. 이렇게 말하면 금방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핀잔을 들을지 모른다. 하지만 공상이 현실이 되는 날을 위해 준비해야 하는 것이 현재 인류의 임무이기도 하다.

과학자들이 SETI(지구외 지적생명 탐사)계획을 실질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면, SF는 인간의 자기 반성과 변신을 위한 '외계 지적생명체 탐사 프로그램'의 문학적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8편의 SF 중.단편을 담고 있는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행복한 책읽기)는 탁월한 전범이다. 특히 표제작 '네 인생의 이야기'는 인간이 자신과 지적 교류를 할 수 있는 외계인을 통해서 인식뿐만 아니라 실천적 차원에서도 획기적 변용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물리학의 '변분(變分) 원리' 방식으로 사물을 파악하는 외계인의 언어체계를 통해 세상의 이치에 접근할 때, 과연 우리 인간은 삶을 어떻게 인식하고 유추하며 수용할 수 있는지 치밀하게 묻고 있기 때문이다.

테드 창의 작품들은 인간의 자기 변신을 위한 진지한 준비와 연습이 환상적 픽션의 차원에서 더욱 실감나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SF가 창조하는 '우주 신화'는 우리의 '인생 실화'와 얽혀 있기 때문이다. 21세기에 SF가 인문적 성찰을 위해 더욱 중요해지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김용석(영산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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