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근로자 무시하는 발상 어디서 나왔나 『사랑합시다』|사극물에 비닐장판·플래스틱 그릇… 눈에 거슬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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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어느 특정 직업을 코미디나 드라머에서 나쁜 배역으로 등장시킬 경우 빗발치는 항의 때문에 작가나 방송국이 골치라는 얘기는 일반 시청자들도 알만큼 알고 있다.
그래서 말썽을 피하려다 보니 우리네 코미디에는 항의해올 여지가 전혀 없는 도둑놈만 주인공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다는 궁색한 해명도 얼마쯤은 수긍이 간다.
그러나 MBC-TV의 매일연속극 『사랑합시다』 (김수빈 극본, 유흥렬 연출)가 지난 13일 방영분에서 일으킨 물의는 앞서 이야기한 자기 직업에 대한 과민반응과는 다른 차원에서 따져봐야 할 것 같다.
공부 못하는 머리 나쁜 아이는 분에 안 맞는 대학배지를 선망하는 대신 『동사무소나 우체국 같은데 취직해야 한다』는 대사는 그 발상에서부터 문제가 크다.
『사랑합시다』를 즐겨보는 시청층이 동사무소나 우체국처럼 박봉이면서도 격무를 감당해야 하는 수많은 서민근로자 가정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었다면 작가도, 제작진도 이런 따위의 실수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극이나 시대극의 경우 고증이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은 비단 한 두번이 아니다. 역사학자나 민속연구가 등 전문가의 눈에만 그 잘못이 발견되는 것에서부터 그 방면에 전혀 조예가 없는 일반 시청자의 눈에조차 거슬리는 하찮은 소도구에 이르기까지 한없이 넓고 다양하다.
이를테면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새아씨』 (MBC-TV)의 경우 산모와 첫 대면하는 갓난아이가 크기나 울음소리로 보아 두어 달 된 아기만한 것이야 참는다지만 울음달래는 고무 젖꼭지를 물고 있는 것에 이르러서는 실소를 금하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KBS 제2TV 15일 밤 10시40분의 『전설의 고향』「어녀」편에 나오는 아기가 털실로 짠 양말을 신고 있는 따위의 작은 실수는 드라머의 리얼리티를 크게 해친다.
그밖에도 『암행어사』 『포도대장』같은 조선시대쯤을 배경으로 한 사극에서 흔히 발견되는 비닐장판 깔린 온돌방이나 플래스틱 그릇(심한 경우 그릇 밑에 찍힌 영자상표가 뚜렷이 보일 때도 있다) 같은 것들은 컬러화면으로 해서 전혀 눈속임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소도구 담당자들은 유념해야 할 것이다. 모 『장희빈』 (MBC-TV)에 나오는 베갯잇에서 양식 자수법인 레이스 뜨기 장식이 달려 있는 따위의 자질구레한 미스는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힘들만큼 흔하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본격적 고증도 중요하지만 자칫 소홀해지기 쉬운 하찮은 소도구들에서 오히려 대부분의 보통사람들은 시청자에 대한 성의를 가늠한다는 것을 드라머 제작진들은 알 필요가 있다. <이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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