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비즈] 허태학 삼성유화 대표 가면 그도 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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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1978년 당시 호텔신라 운전기사였던 김봉열(57.사진(右))씨는 허태학 총무과장의 업무용 차량을 몰기 시작했다. 그때 김씨는 30세, 허 과장은 34세였다. 당시에는 호텔 짓는 일과 관련된 인허가 업무 등 정부를 상대로 한 일이 워낙 많다 보니 총무과장에게도 전용차가 나왔다. 호텔신라에서 시작된 두 사람의 인연은 중앙개발(삼성에버랜드)을 거쳐 삼성석유화학으로까지 무려 27년째 이어지고 있다.

항상 남보다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신념으로 똘똘 뭉쳐있던 학군장교(ROTC) 출신의 총무과장은 지금 삼성석유화학 대표이사가 됐다. 그 후 김씨는 줄곧 허 사장과 생활을 함께하며 호텔신라에서 17년, 에버랜드에서 8년을 보내고 현재 삼성석유화학에서 2년째 근무 중이다. 김씨는 "호텔신라에서는 매달 3000㎞, 에버랜드 시절에는 매달 5000~6000㎞씩 뛰었다"고 말했다. 바쁘게 사는 사장과 일하다 보니 이제까지 승용차를 16대나 갈아탔다. 차종만 해도 78년 포니로 시작해 포니Ⅱ.프린스.그랜저.뉴그랜저.에쿠스 등 10종을 바꿨다. 삼성석유화학 관계자는 "그룹 창업자나 그 가족의 운전기사는 오래 근무하는 경우가 간혹 있지만 운전사가 전문 경영인 한 사람만을 이렇게 오래 모셔온 경우는 매우 드물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두 사람의 인연이 특이하게 길어진 데에는 허 사장이 일찌감치 호텔신라 총무과장.총무부장 시절부터 회사에서 전용차량을 지원받은데다 임원 경력이 89년 제주신라 총지배인(상무) 이래 16년이나 될 정도로 오래됐기 때문이다.

허 사장은 93년 중앙개발 대표이사가 된 후 12년째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는 삼성그룹의 장수 CEO로도 꼽힌다.

김씨는 허 사장에 대해 "의리가 있는 분"이라고 말했다. 한번 믿고 맡기면 끝까지 함께하는 성격이라는 것이다.

"차 타고 갈 때, 요리조리 가라고 길을 지정해주는 사람도 있잖아요. 하지만 사장님은 그렇지 않아요. 목적지에만 가면 뒤로 가든, 옆으로 가든, 제가 알아서 가도록 믿고 맡기는 성격이지요."

허 사장은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좋은 경영"이라고 말했다. 운전도 회사의 다른 업무와 마찬가지며, 각 분야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중요하다고 허 사장은 강조했다. 오랫동안 CEO 생활을 한 그에게 비결을 물었다.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실적"이라고 했다. 그는 부하직원과 잘 지내는 리더십에 대한 질문에는 "관심, 배려, 칭찬, 격려"라며 구호를 외치듯 답했다. 허 사장은 "윗사람의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가 조직 상하의 커뮤니케이션을 얼마나 원활하게 하는지 알아야 한다"고 했다.

글=서경호, 사진=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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