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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내전으로 치닫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원주민들의 천연가스 산업 국유화 요구로 빚어진 볼리비아 반정부 시위가 내전으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AFP 통신 등 외신들이 8일 보도했다.

동남부 산타크루스 지역의 부유한 스페인계 백인들에 대한 인디언계 원주민들의 반감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원주민들은 인구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시위대는 이른 시일 내에 대선을 실시, 원주민들의 권익을 옹호해줄 수 있는 '민중의 대통령'이 탄생하기를 바라고 있다.

의회는 6일 사임 의사를 밝힌 카를로스 메사 대통령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모일 예정이었다. 그러나 원주민.노조.학생 등 수만 명이 참가한 가두 시위의 기세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아 결국 회의를 포기했다.

볼리비아 시위는 지난달 의회가 천연가스 산업에 투자한 외국 기업에 대한 세금을 현행 18%에서 50%로 인상하기로 의결하면서 촉발됐다. 천연가스 산업의 전면 국유화를 요구해 오던 원주민들이 "세금 인상은 눈 가리고 아웅"이라며 반발한 것이다. 수 주째 이어진 시위로 인해 행정수도 라파스는 마비 상태에 빠졌다.

시위대는 8일 볼리비아 에너지 개발에 투자한 영국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과 스페인 렙솔이 운영하는 유전 지대 일곱 곳을 점거했다.

메사 대통령은 전날 밤 연설에서 "이대로 가면 볼리비아는 내전 상황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원주민 측 지도자 필리페 키스페는 내전을 오히려 반겼다. 그는 "우리는 참을 만큼 참아왔다. 이제는 우리가 권력을 잡아야 할 때다. 침입자(외국 자본)들이 우리 영토를 떠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메사 대통령은 "이번 사태의 유일한 해결책은 조기 대선을 치르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권력 승계 1순위인 호르만도 바카 디에즈 상원의장과 2순위 마리오 코시오 하원의장의 사임도 촉구했다. 원주민들은 두 사람 다 반기지 않고 있다. 디에즈 상원의장은 산타크루스 지역 출신이다.

조기 대선을 치르게 되면 에두아르도 로드리게스 대법원장이 과도 정부의 수반으로서 선거 일정을 관리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반정부 세력들은 농민 출신 에보 모랄레스 사회주의운동당(MAS) 총재를 차기 대권주자로 밀고 있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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