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세월호 참사 반 년, 정쟁 속에 안전은 후퇴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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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세월호 참사 6개월. 짧지 않은 이 기간을 지나온 대한민국호의 노정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294명이 숨졌고 10명은 여전히 행방이 묘연한 이 사고만 참담한 게 아니다. 온 나라가 슬픔을 공감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힘을 합쳐야 하는 시기에 갈등과 분열을 키우고, 안전 사회를 위한 청사진 하나 그려내지 못하는 형편없는 수준을 드러낸 현실은 더욱 참담하다.

 사고는 100% 인재(人災)였다. 이익에 눈먼 선사는 노후한 선박에 무리한 증·개축으로 복원성이 불량해진 ‘운항해선 안 되는 배’를 바다에 띄웠고, 선원들은 무책임했으며, 화물적재와 고박도 대충대충 하는 등 총체적 안전불감증을 노출했다. 사고에 대응하는 안전시스템은 엉망진창이었다. 뱃길을 통제하는 진도연안해상교통센터(VTS)는 나태했다. 구조에 나선 해경들의 무능엔 억장이 무너졌다. 사고 현장의 해경 함정은 적극적 구조활동을 하지 않았다.

 이런 불량선박이 바다를 누빌 수 있었던 배후에는 안전점검 부실, 업체와 관리기관의 유착 등 총체적 부패와 관료사회의 적폐가 자리 잡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정부의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사고 후 선장과 선원, 해운사 관련자뿐 아니라 해경 등 399명이 입건되고 154명이 구속돼 재판을 받는 것도 적폐와 안전불감증의 연결고리가 깊고 넓었음을 의미한다.

 더욱 참담한 건 이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고, 정치권은 각자 자기 이해의 관점에서 사고를 정쟁의 빌미로 이용해 국론을 분열시켰으며, 국민 여론도 사분오열됐다는 점이다. 사고 초기 정부가 약속한 안전시스템 보강은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달 연안여객선 안전관리 대책을 발표했으나 이는 연안여객선 166척에 대한 대책이었을 뿐 1900척의 유람선이나 세월호급의 페리는 대책에서 제외함으로써 ‘하는 척’만 하는 행정의 적폐를 되풀이했다.

 이번 국감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세월호 사고 후 선박사고는 341건(4월 17일~8월 31일)으로 전년 대비 99건이나 늘었다. ‘선박안전관리’를 강화한다던 약속은 공염불이었다. 사고 초기 ‘국가 개조’를 외쳤던 정부는 개조는커녕 개선의 단서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번 감사원 국감에선 전원 구조 오보를 확인한 후 정식보고라인으로 보고가 이루어지지 않은 정황을 밝혀내고도 추가 조사를 하지 않았는가 하면, 세월호 감사 징계 요구자도 경징계로 그치는 등 개선 의지가 없음이 드러났다. 이것이 세월호 참사 6개월의 자화상이다. 이런 상태로 다시 6개월을 보낸다면 우리 공동체엔 미래가 없다. 이젠 비난과 정쟁에서 벗어나 사회 안전시스템 확보를 위해 실질적인 비용부터 계산하고, 비용 부담 방안을 마련하고, 안전 시스템을 확충해야 한다. 그것이 세월호의 비극적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