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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변함없는 맛의 비밀은 전통 토굴 숙성이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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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방식으로 담근 젓갈을 고집하는 굴다리식품의 김정배 대표와 부인 고삼숙씨는 3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 부부가 토굴에서 곰삭은 새우젓을 들어 보여주고 있다.

“냄새 참 좋죠?” 토굴에서 만난 굴다리식품 김정배(57) 대표가 기자에게 던진 첫마디다. 기자는 서른 중반이 넘도록 젓갈 냄새를 ‘좋다’고 느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김 대표에게 젓갈 냄새가 좋으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김 대표는 “그럼요, 이게 바로 우리 외할아버지 냄새고, 어머니 냄새인데 왜 안 좋겠어요”라며 호탕하게 웃는다. 그때 느낌이 왔다. 3대를 이어온 온양의 마지막 젓갈 명가라는 수식어 외에도 뭔가 특별한 것이 더 있겠구나 싶었다.

굴다리식품의 시작은 무려 8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산만, 삽교천 방조제가 생기기 전 아산시 영인면 백석포리가 포구였던 시절 김 대표의 외할아버지가 객줏집과 젓갈가게를 운영하면서부터다. 김 대표의 어머니가 젓갈가게를 물려받았고, 김 대표와 부인 고삼숙(55)씨가 다시 물려받아 맥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린 시절 김 대표는 자신이 대를 이어 젓갈가게를 운영하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김 대표에게 ‘젓갈집 아들’이라는 꼬리표는 반드시 떼어내고 싶은 것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새우젓”이라고 불러대는 것도 싫었고, 김장철이 되면 공부보다 장사에 두 팔을 걷어붙여야 하는 현실도 싫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좋은 재료를 구하기 위해 하루가 멀다 하고 지방으로 떠나는 아버지와 손에 물 마를 날 없이 고생하는 어머니의 팍팍한 삶이 안타까웠다.

새우젓.

하지만 어른이 되면서 김 대표는 젓갈가게를 본인이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젓갈가게는 외할아버지와 부모가 일생을 오롯이 바친 ‘삶’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인 고씨에게 자신의 뜻을 전했고, 고씨는 흔쾌히 김 대표의 뜻을 받아들였다.

며느리 고씨의 눈에 비친 시부모의 모습은 더없이 아름다웠다. 제대로 된 젓갈을 만들기 위해 좋은 재료를 찾아다니는 시아버지는 ‘장인(匠人)’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어른이었고, 도보상이든 손님이든 누군가가 찾아오면 뜨끈한 밥에 젓갈 몇 가지 곁들여 내오던 시어머니의 모습은 ‘장사치’가 아니라 ‘사람’ 그 자체였다. 그래서 고씨는 젓갈집 며느리라는 게 훈장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시부모의 삶을 고스란히 이어가고 싶었다.

김씨 부부는 참으로 우직하게 젓갈 맛을 지켜왔다. 부모가 하던 방식 그대로 신선한 재료와 신안 천일염으로 젓갈을 담그고 토굴에서 숙성시켰다. 손님이 찾아오면 고슬고슬 뜨끈한 밥에 젓갈 몇 가지 무쳐 내놓는 정도 그대로 이어왔다. 물론 달라진 것도 있다. 건강을 위해 나트륨 섭취를 줄여가는 시대에 발맞춰 소금 양을 줄였고, 해양수산부로부터 전통식품 품질 인증을 받았다. 최근에는 생산과 유통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해 요소를 철저히 관리해 HACCP 인증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 과정이 모두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HACCP 인증 받아

8년 전부터 외국산 젓갈이 수입되면서 국내 젓갈 시장은 위기를 맞았다. 굴다리식품도 예외는 아니었다. 소비자들이 값싼 중국산 젓갈을 찾으면서 손님의 발길이 뜸해졌기 때문이다. 이에 고씨는 남편에게 “시대가 변하고 소비자가 싼 걸 원한다면 우리도 수입산 젓갈을 함께 팔자”고 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 대표는 “모두가 수입산 젓갈을 팔기 시작하면 우리 전통 젓갈이 사라져버리는 건 시간문제”라며 “우리라도 전통 젓갈의 맥을 이어야 한다”며 흔들리는 부인의 마음을 붙잡았다. 그때 상황을 전해듣다가 김 대표에게 물었다. "저렴한 수입산 젓갈에 맞설 자신이 있었느냐”고. 그러자 김 대표는 “세월이 가고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맛은 변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젓갈은 음식이기 이전에 우리의 문화이자 전통이기에 오롯이 지켜나가야 하는 것”이라면서 말이다.

 
젓갈 체험장 만들고 전국 강연

전통 젓갈을 만들고 지켜온 김씨 부부의 지난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부부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단순히 전통 젓갈의 맥을 이어가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소비자가 전통 젓갈의 우수성을 알고 함께 지켜나갈 수 있는 현실을 만드는 것이 김씨 부부의 꿈이다. 그들은 꿈을 이루기 위해 젓갈 체험장을 만들었고, 전국 어디든 찾아가 강연하며 전통 젓갈의 장점을 전파하고 있다.

“힘이 닿는 데까지 전통 젓갈을 만들고, 알리고, 지키고 싶다. 우리는 그것이 숙명이라고 믿는다. 우리가 최선을 다하고 나면 그 다음엔 아들과 딸이 우리 꿈을 이어가겠다고 하니 지금 당장 꿈을 이루지 못한다고 해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속도가 중요한 건 아니다. 좀 늦더라도 목표에 정확히 닿는다면, 전통 젓갈을 지켜갈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거다.”

인터뷰를 끝내고 사진 촬영을 위해 다시 한번 토굴을 찾았다. 토굴 속에 밴 곰삭은 젓갈 냄새가 정겹게 느껴졌다. 천천히 제 한 몸 삭혀 그 무엇도 흉내내지 못할 깊은 맛을 내는 젓갈이, 그 곰삭은 향이 김 대표 부부의 삶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글=장찬우 기자, 윤현주 객원기자 glocal@joongang.co.kr
사진=채원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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