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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육, 소비자 뜻대로" "기득권층만 유리해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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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자유주의적 이념에 토대를 둔 새 교육단체가 7월 초 탄생한다. 자유주의 교육연합(이하 자교연)이라는 이름의 새 단체는 고교평준화와 3불정책(본고사.기여입학제.고교등급제 금지) 등 핵심적인 교육정책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또 교원평가제에 대해서는 도입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교육현장에 좌파적 논리 대신 자유주의적 이념을 보급해야 한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 같은 견해는 진보적 교원단체의 대표 격인 전교조와 전혀 다른 것이어서 앞으로 각종 교육현안을 놓고 두 단체의 첨예한 대립이 예상된다. 중앙일보가 자교연 조전혁 추진위원장(인천대 경제학과 교수)과 전교조 한만중 대변인의 토론 자리를 마련해 각종 교육 현안에 대한 양측의 입장과 논리를 들어봤다.

▶사회=자교연이 출범하면서 고교 평준화 제도 개선을 주장한 만큼 이 문제부터 짚어보도록 하겠다.

▶한만중=공교육과 사교육이 공존하고, 사교육은 경제력에 좌우되고 있는데 공교육까지 시장원리로 하자는 것은 가진 사람들이 자신들의 욕구를 관철하려는 것이다. 이 본질을 이야기해야지 자꾸 평준화, 학교선택권으로 얘기하는 것은 솔직하지 못하다. 차라리 기득권층의 교육선택권을 보장하라고 얘기하는 것이 맞다.

▶조전혁=평준화의 목적 자체는 아름답고 이상주의적이다. 문제는 목적이 좋다고 다 바람직한 건 아니라는 것이다. 평준화 30년 동안 그 목적이 달성됐다고 할 수도 없다. 제대로 소비자들이 바라는 교육을 했다면 과외 망국적인 행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형식적인 교육 기회 균등이라는 평준화 논리 때문에 학교선택권이 빼앗겼고, 그 결과는 비효율적이고 공정성도 없다.

▶사회=교육에 시장논리를 적용해야 경쟁력을 높이는 교육의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는 주장도 있다. 교육의 경쟁력에 비중을 두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조=시장논리라는 말보다 경쟁논리가 맞다. 경쟁력은 경쟁구조가 없으면 생겨날 수 없다. 교육분야에서도 경쟁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교육을 국가가 독점하고 1등부터 50만 등까지 한 줄로 세우는 입시 시스템에서의 경쟁은 바람직하지 못한 경쟁이다. 학생.개인 간 경쟁만이 아니라 사실 시스템이 경쟁해야 한다. 성적만이 아닌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학교가 생기고 그런 학교들의 경쟁 결과를 대학이 평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데는 반대하지 않는다. 한국에는 특목고, 특성화 고교, 자립형, 자율학교 등 영국이나 미국의 사립학교 비율만큼 많은 학교 유형이 있다. 이들 학교를 보고 교육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얘기한다. 그런데 우리 현실에서 이들 학교에 가는 이유가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다. 대학이 다양화.특성화되지 않으면 고등학교는 결국 대학의 서열구조에 자석처럼 끌려가기 때문에 입시에만 몰두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의 경쟁력은 의미가 없다.

▶사회=자교연이 3불 정책의 폐지를 앞세우고 있는데 이에 대해 얘기해 보자. 우선 본고사의 경우 대학 자율성 확보 차원에서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반면 사교육 과열 등 우려의 시각도 있는데.

▶조=국.영.수 문제 풀이 중심의 본고사가 꼭 바람직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대학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허용할 수 있어야 한다. 선발의 다양성이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적인 얘기지만 가령 서울대 경제학과에 붙은 학생이 선발 기준의 차이 때문에 인천대 경제학과에 떨어질 수도 있어야 한다. 연세대 안에서도 경제학과와 경영학과는 신입생 선발 기준이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한=지난해 서울대 수시에서 과학고에서 올림피아드에 대비해 보던 교재의 문제나 7차 교육과정에서 다루지 못하게 된 문제까지 출제됐다. 이러면 고교에서는 미리 거기에 맞게 반을 편성하거나 사교육으로 학생들을 밀어낼 수밖에 없다. 결국 본고사 부활은 현재 시점에서는 더욱 심각한 사교육을 부추기는 등 부작용이 클 수밖에 없다.

▶사회=열심히 하는 학교와 그렇지 않은 학교와의 차이가 인정되지 않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한=전국 규모의 모의고사 점수 차이를 학력차라고들 한다. 그 차이는 현재 사교육에 의해 좌우되는데 이를 입시에 반영하자는 것은 특정 계층의 사회경제적인 장점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수능 성적이 좋은 학생보다 내신이 좋은 학생이 대학에서 성취도가 더 높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내신 성적은 나름대로 성취도를 가진 학생들이 자기 주도하에서 공부해 얻은 결과라는 방증이다. 고등학교가 의무교육 수준인 현 상황에서 이 결과는 지역 간 차이 없이 인정해 줘야 한다.

▶조=물론 국.영.수 문제를 잘 푸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결국 문제 해결 능력이 있는 학생으로 키우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대학이 자율적으로 선발해야 한다. 내신이 높으면 적응을 잘한다는 결과가 발표되면 입학사정에 반영해야 한다. 학력차가 분명히 존재하고 그게 중요하다면 반영하면 되는 것이다. 그 부분도 대학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본다.

▶사회=열악한 사립대 재정에 대한 안전장치로 기여입학제 도입을 검토할 때가 됐다는 주장도 있는데.

▶한=교육을 둘러싼 계층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대학 뒷문을 열어 주자는 주장이 있다. 그 돈으로 장학금을 주면 계층 갈등을 완화할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지금 사회 구성원들이 수용할 수 있을지가 문제다. 아직 국민 다수가 교육을 통해 사회적 신분 이동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신분 이동 통로까지 경제력을 가진 사람만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한다면 그 사회적 갈등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기여입학금이 대학 재정을 강화하고 장학금으로 쓰인다는 것은 가진 사람들의 편한 얘기다. 교육을 통해 무언가 해 보려는 절대 다수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조=사실 가진 사람들은 한국 대학에 기여입학시키지 않아도 유학을 가는 등 다른 수단이 많다. 그런 돈을 빈곤층 장학금으로 돌려 다시 계층 이동에 쓸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여입학제 허용 문제를 검토할 수 있다고 본다. 불공정해 보이지만 이게 공정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사회=교원평가제 논란이 한창이다. 교육 수요자의 요구에 충실하고 교사의 질을 높이자면 교원평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는데.

▶한=전문성 함양을 위한 평가는 필요하다. 하지만 전문성 함양을 위한 기본적인 투자나 교원양성.임용.연수.승진구조에 대한 왜곡된 구조는 방치하고 평가만 강조하는 데 반발하는 것이다. 현재 교육인적자원부가 내놓은 안은 실체가 없고 목적이 뭔지도 모르겠다. 교육부도 부적격 교사 문제는 교원평가로 해결할 수 없다고 인정한다. 국민은 최소한의 자정장치가 작동돼 성추행 교사나 성적 비리 교사가 없는 교직사회를 원한다. 그러면 거기에 맞는 구체적인 장치를 마련해야지 평가만 강조해서는 안 된다.

▶조=누구든 평가받기는 싫어하지만 평가는 꼭 있어야 한다. 교수도 평가받는다. 처음엔 학생들이 인기투표식으로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학점을 잘 주고 수업을 부실하게 한 교수들은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평가방법도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으니까 평가를 못 받겠다는 것은 옳지 못하다. 무능력 교사들에게는 지속적인 교사 연수와 전문성 제고 프로그램을 받을 수 있도록 투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좋은 평가를 받으면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이 필요하다.

▶사회=부적격 교사의 퇴출에 대한 입장은 어떤가.

▶한=비리 교사는 부적격 교사가 아니라 범법자다. 문제는 경계선에 있는 무능력 교사다. 사실 초임 교사가 제일 무능력하다. 나이든 교사가 시대 변화에 뒤처질 수도 있다. 그것을 개인 능력으로 돌려야 하는가. 또 평가 항목을 계량화하다 보면 결국 학생의 학업 성취도로 교사의 능력을 평가하게 될 것이다.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다.

▶사회=사립학교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사학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조=사학법 개정안은 학교 설립자는 돈만 내라,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한다는 식이다. 물론 비리 사학도 많지만 건전한 사학이 더 많다. 그분들이 학교를 설립할 때는 특수한 목적이 있었다. 그게 교육과정이나 커리큘럼에 반영되지 못하는 것은 문제다. 현재의 사학법 개정안은 비리 사학에 한해 적용돼야 할 문제라고 본다.

▶한=한국의 사학, 특히 사립 중.고교는 준공립적인 성격이 강하다. 정부가 재정을 지원한다. 최소한 국민 세금이 투자되면, 그만큼 투명성과 공공성이 필요하다. 성적 비리가 사립학교를 중심으로 계속되는 것은 사립학교의 불투명한 시스템 때문이다.

사진=신인섭 기자
정리=최현철.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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